2013년 12월 14일 토요일

물한勿閑

골을 따라 흐르는
물 같은 것들이라
함부로 발길을 막아서지 못한다
재를 따라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것들이라
감히 옷자락을 붙잡지 못한다
물이나 바람을 물려받아서
어디 한 군데 걸리는 곳이 없으니
저 물한勿閑이
내 生의 전부였을 것이다
무덤 속에서 찾아낸 사상에
전염된 저 계곡이 위태롭다
철 지난 뒤에 찾아온 이념에
물들은 저 계곡이 맹목적이다
겨울 물한계곡에서
삶의 경계도, 죽음의 경지도 없는
바람과 물이 만났으니
꽃은 비탈 아래 숨어
눈꽃을 피우고
나무는 능선 옆에 비켜서면서
얼음나무로 섰다
내가 넘어서야 할 물 같은
산맥이 있다
내가 뚫고 나가야 할 바람 같은
비극이 있다
물을 밟고 바람을 이고
돌아올 기약도 없이 홀로 가야 하는
계곡이 있어서
물한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