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일 월요일

여자가 부엌에 있을 때 -이향아-

여자가 부엌에 있을때
식구들은 갑자기 배가 고픈가 보다.
여자가 부엌에 있을 때
식구들은 비로소 안심인가 보다.
있을 자리에 있구나 생각하는가 보다.
그녀가 부엌에서 무얼 하는지
아무도 확실히는 모르나 보다.
독한 파 마늘을 다지고
매운 고추를 으깨어
날선 칼을 들어 질긴 힘줄을 난도질할 때,
만사가 두붓모처럼 연하게 되어
다만 여자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다른 식구들은 꿈에도 모르나 보다.
냄비 바닥 눌러서 불길을 잠재우고
젓가락 휘저어 세계의 옆구리를 가르는
여자에게 복종하는 순한 세상을
모르겠지,
꿈에도 짐작할 수 없겠지.
다만 여자가 부엌에 있을 때
사랑하는 그대들이여,
행복들 하신가

그렇다면 됐다.

여자도

행,

복,

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