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는
몇 개 돌기둥이 서있었다
근정전 앞에 병렬해있는
정일품 종일품 품계를 가슴에 안은 채
풀도 이끼도 나지않는
태양의 긴 그림자를 을씨년스럽게 매달고 있었다
모든 꿈이 정지된 시간
모든 생명이 호흡을 멈춘 계절
노년은 거꾸러 가는 시계
무덤 앞에 선 뻐꾸기의 울음소리였다
그러던 어느날 커다란 태양이
다시 우리의 머리 위에 나타나 쨍쟁 내리쪼이더니
지구 중심으로부터 비석은 흔들리며
스스로를 폭파 해체하기 시작하였다
겨울 어디선가 나타난 숲 속 나무들은
다시 생장점을 회복한 듯
부지런히 팔 다리를 기지개 켜며
나뭇가지에 봄날 잎새를 달기 시작하였다
웅얼거리는 먹구름에 막혀있던 상상력이
한 여름날의 풀잎처럼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숲 속 풍경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