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5일 금요일
이해인의 ´개나리´ 외
<개나리에 관한 시 모음> 이해인의 ´개나리´ 외
+ 개나리
눈웃음 가득히
봄 햇살 담고
봄 이야기
봄 이야기
너무 하고 싶어
잎새도 달지 않고
달려나온
네 잎의 별꽃
개나리꽃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길게도
늘어뜨렸구나
내가 가는 봄맞이 길
앞질러 가며
살아 피는 기쁨을
노래로 엮어 내는
샛노란 눈웃음 꽃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개나리 꽃대에
개나리 꽃대에 노랑불이 붙었다. 활활.
개나리 가늘은 꽃대를 타고 올라가면
아슬아슬 하늘 나라까지라도 올라가 볼 듯 …
심청이와 흥부네가 사는 동네 올라가 볼 듯 …
(나태주·시인, 1945-)
+ 개나리
병아리떼 다 어딜 가고
부리만 오밀조밀하게 모아서
꽃을 만들고
모양과 크기가 변함없는 형태로 마주서서
서로를 위로하고 토닥거려 주면서
하늘을 우러른다.
(전병철·시인, 1958-)
+ 개나리
삼월. 봄이 왔네.
어제저녁 꽃샘추위 안달하더니.
이른 새벽 수줍은 노란 저고리
새색시 모셔왔네.
아침햇살 창문 열면
개나리 노란 옷고름. 이슬 한 잎
손 끝. 여민 가슴 푼다네.
(장수남·시인, 1943-)
+ 개나리
나리 나리 개나리
노오란 개나리
봄 나라의 대표선수
노오란 운동복의 개나리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
개나리
다닥다닥 붙은
앙증맞은 꽃 무리
노오란 꽃 덤불
봄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꽃
전혀 까탈스럽지 않은 꽃
개나리
그러기에
너에게
정이 많이 간다.
(이문조·시인)
+ 개나리
입춘이 몰고온
노란 제복의 합창단
방울종이 울리면
얼었던 가지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버들강아지 기어나와
눈 대신 귀를 키워
귀동냥으로 종소리 듣고
수직으로 뚫렸던
골목이
노랗게 휘어든다.
(류정숙·시인)
+ 개나리
너의 창 밑에 파수병 되어
죽은 듯 살아 있는
마른 몸 하나
배반을 모르는 순종의 눈빛
봄을 알리는
척후대로 진치고 있다
부대끼는 허리
입술 깨물던
어젯밤의 통증은
나를 버리고 나를 일으키는
헌신의 다짐인가!
이른 아침
사열하는 사열대에
조롱조롱 부리를 벌리고
˝봄이 왔어요˝
외치는 소리가
노랗게 퍼져간다.
(유소례·시인, 전북 남원 출생)
+ 개나리
따스한 봄볕에 개나리
길가로 목을 내어 한 무더기 아이들과
해맑게 탄성을 지르며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개나리 피는 곳은
항상 따뜻하고 화사하여
그곳엔 열정과 환희와
모든 이의 사랑이 함께 머문다
재민이와 바다와
하늘이와 보람이와
그리고 여드름 닥지닥지 영근
선주의 꽃으로 피어난다
다시 보는 오래된 벗처럼
그렇게 함박웃음으로 노랗게
찾아왔고 내년에도
나와 너와 그와 또다른 모든 이들의 꽃으로
화사하게 환생하리라
사랑과 희망의 꽃이여.
(남경식·사진작가 시인, 1958-)
+ 개나리
개나리가
창끝이 되어
내 동공으로 파고듭니다.
잠들지 말라고
깨어 있으라고
예수처럼 오고야 말
봄날을 위하여 예비하라고
후미진 울 밑으로부터
녹슨 공장 울타리를 타고 올라와
날카롭게 내 허기진 노동을 재촉합니다.
하품 나는 졸리운 삼월에.
(정세훈·시인, 1955-)
+ 개나리
겨우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빈혈기 가시지 않아
어지러움만 더하고
아직도 찬바람에
헛기침만 해대는 강가는 살얼음인데
황달기로 누렇게 뜬
영양실조의 얼굴.
(정재영·교사 시인)
+ 개나리
언 땅에 물기가 돈다
몇 달을 고행(苦行)했다.
너는 먹먹한 설움을 털어 내며
햇살이 적요로이 조는 양달에서
앙상한 몸뚱이로 기를 뿜어낸다
솔잎이 드러눕고 달빛이 일어선다
솔잎에 매달려 며칠 동안을
하얗게 떨며
들려주던 바람의 목소리
이제 넌
두렵더라도
몸을 열 때가 되었어
목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푸른 바람결에 떠밀려
아뜩한 현기증에 몸을 떨던 너
어느새 아랫도리의 힘이 풀리면서
펑펑펑
하늘을 향해 기포들처럼 터지는
샛노란 바람구멍
(손정모·교사 시인, 1955-)
+ 서울의 개나리
서둘렀습니다
매연과 턱밑까지 깔린 아스팔트 열기
소음과 아귀다툼
빈부와 노동과 땀 서러움과 분노와
숨이 막혀 빨리 꽃잎을 내보냈습니다
(손석철·시인, 1953-)
+ 개나리꽃
가꾸지 않아도
우리보다 먼저 와
들녘에서 기다려주는
개나리
지난겨울 너무 추워
별빛 내려와
불을 지펴 놓았나
혼자 타지 않고
마음까지 태우고 있어
그저 보기만 해도
이리 눈부신데
가꿀수록 곰팡이 피는
세월,
미안한 마음
꽃잎 몇 개 떨어지고
몸만 왔다 가는.
(권성훈·시인, 1970-)
+ 개나리꽃
산 속에서 제일 먼저 노랗게
봄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나
뒤뜰에서 맨 먼저 피어 노랗게 봄을 전하는
산수유나무 앞에 서 있으면
며칠 전부터 기다리던 손님을 마주한 것 같다
잎에서 나는 싸아한 생강 냄새에
상처받은 뼈마디가 가뿐해질 것 같고
햇볕 잘 들고 물 잘 빠지는 곳에서 환하게 웃는
산수유나무를 보면 그날은
근심도 불편함도 뒷전으로 밀어두게 된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개나리꽃에 마음이 더 간다
그늘진 곳과 햇볕 드는 곳을 가리지 않고
본래 살던 곳과 옮겨 심은 곳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깊은 산 속이나 정원에서만 피는 것이 아니라
산동네든 공장 울타리든 먼지 많은 도심이든
구분하지 않고 바람과 티끌 속에서
그곳을 환하게 바꾸며 피기 때문이다.
검은 물이 흐르는 하천 둑에서도 피고
소음과 아우성 소리에도 귀 막지 않고 피고
세속이 눅눅한 땅이나 메마른 땅을
가리지 않고 피기 때문이다.
(도종환·시인, 1954-)
+ 개나리꽃
활짝 핀 개나리꽃이
울타리마다
얼굴을 내밀고 섰다
안녕하시냐고
반가이 인사하는 것일까
안타까이 기다리는 사람 있어
발돋움하는 것일까
일제히 부르는 소리
손들어 저으며
그리운 사람을 찾는 소리
꽃잎마다 눈동자가 되어
그리운 사람 찾는구나
꽃잎마다 얼굴이 되어
그리운 이를 부르는구나
서울에도
평양에도
지리산 산골 마을에도
백두산 기슭 어느 외딴 마을에도
개나리꽃이 피었건만
기다려도 올 수 없는 사람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
모두가 개나리꽃이 되어
일제히 부르는 소리
모두가 개나리꽃이 되어
일제히 손을 젓는 모습
이젠 그만 하라고
한결같이 아우성치는 소리……
(이인석·시인, 1917-1979)
+ 이 늦은 참회를 너는 아는지
내가 술로 헝클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어둔 길가에
개나리꽃이 너무 예쁘게 피어 있었지요
한 가지 꺾어 들고는
내 딸년 입술 같은 꽃잎마다
쪽, 쪽 뽀뽀를 해댔더랬지요
웬걸
아침에 허겁지겁 나오는데
간밤에 저질러버린
다시는 돌이키지 못할 내 잘못이
길바닥에 노랗게 점점이 피를 뿌려 놓은 것을
그만 보고 말았지요
개나리야
개나리야
나는 고쳐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인간이다 인간도 아니다
(안도현·시인, 1961-)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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