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안의 책상 위의 꽃병 속의
붉은 향기의 장미꽃이 지면서
가시 돋힌 줄기를 슬쩍 건드릴 때
비도 없는데 펼쳐진 우산 같은
후박나무 잎 앞 마당에 떨어지면서
나무 밑둥을 툭 하고 건드릴 때
북한강 남한강 두물머리에 다 모여
경계없는 한강 강물이 흐르면서
작심한 듯 좌우로 손을 내밀고
강둑을 한 번씩 이리 저리 치고 갈 때
지금은 모두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때라고
생각해보니 당신을 너무나 원한다고
전화를 걸어
그대에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저 건너 하늘은 어떨까 궁금하여
어두운 숲속의 까마귀 날아가면서
울음 소리로 허공을 가를 때
문을 열고 조용히 나타난 달빛이
첫날밤 새색씨처럼 산언덕의 옷을 벗길 때
깊은 바다에 눈 내리면서
물고기로 만들어진 섬을 지워버릴 때
지금은 모두
깊은 관계를 맺을 때라고
생각해보니 당신이 너무나 필요하다고
글을 써서 그대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저렇게 가까이 붙어서
살을 맞대며 관계를 갖기 전까지
아무 일 없는 듯이 꽃 피고 잎 나고
강물이 흐르고 새들은 날아가고
달이 뜨고 그리고 눈이 내리는데
생각해 보니 빛들이 나의 눈속을 꿰뚫고
머리속에 가득찰 때 지금
그 모든 관계를 단칼에 끊어버릴 때라고
마른 하늘에 번개가 번쩍 치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