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7일 일요일

폐물廢物

꽃나무 심겨진 화분 하나
금이 간 채로
골목길에 버려져 있다
아직 푸르른 봄날이건만
뼈마저 누렇게 단풍이 들었다
톱으로 팔을 자른 흔적도 보이고
칼로 목을 친 자국도 남아 있다
수명이 다했다고
꽃 활짝 피고 열매 무성했던
추억을 잊은 것일까
벌레 끼어들지 말라고 약 치고
물 가만 가만 뿌려주고
온갖 거름 먹여주던
그 애정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상처로 얼룩진 몸에
폐기물 딱지까지 철썩 붙어 있다
하루 하루 지나갈 때마다
저 화분 옆에
사용 기간이 지난 문서 같은
古物이 쌓여 가파른 언덕이 되었다
나도 묵언으로 맹세를 하겠다
너무 낡아서 꽃 피지 못하고
열매 맺지 못한다면
아예 뿌리를 거두어 올리겠다고
목숨 연연해 하는 식물 인간 같은
폐물이 되기 싫다고
마른 흙속의 꽃나무 쑥 뽑아
불 같은 세상에게 던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