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4일 월요일

박성우의 ´삼학년´ 외


<추억 시 모음> 박성우의 ´삼학년´ 외

+ 삼학년

미숫가루가 실컷 먹고싶었다
부엌 찬장에서 미숫가루통 훔쳐다가
동네 우물에 부었다
사카린이랑 슈가도 몽땅 털어 넣었다
두레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미숫가루 저었다

뺨따귀를 첨으로 맞았다
(박성우·시인, 1971-)
+ 청량리 역

수많은 사람들 오가는 광장
내 발자국 하나 찍혀 있다
언젠가 경춘선 열차에 올라
호반의 도시 찾아갔다가
행복에 젖어 돌아오던 날
별빛 아래 찍어 놓은 기념의 징표이다
꽃 피고 지고
세월 비 씻기고 바람 불어도
여태껏 지워지지 않은 것 보면
그날 참으로 행복했었나 보다
청량리 역 광장에 가면
내 발자국 하나
나를 기다리고 있다
(손희락·시인, 대구 출생)
+ 쑥부쟁이 피었구나, 언덕에

쑥부쟁이 피었구나, 언덕에
쑥부쟁이야, 너를 보니
모두들 소식이 궁금하구나.

늙은 어머니의 마른 젖꼭지를 파고들던
달빛은 잘 있는가.

전봇대에 오줌을 갈기던 개는
달을 보고 걸걸걸 잘 짖어대는가.

해거리를 하는 감나무에
올해는 유난히 감이 많이 열렸는가.

볼때기에 저녁 밥풀을 잔뜩 묻히고 나와
아아아아 산을 향해
제 친구를 부르던 까까머리 소년은
잘 있는가.
(이준관·시인, 1949-)
+ 묵은 사진첩을

묵은 사진첩을 들추고 있노라니
까닭 모르는 슬픔이
왈칵, 내 몸에 배어 옵니다.

기쁜 얼굴도 그렇고
웃고 있는 얼굴도 그렇고
가만히 입 다물고 있는 얼굴도 그렇고
슬픈 얼굴은 더욱
슬프게 다가옵니다

기억 밖에 아주 묻혀 버린 얼굴들
기억 내에 아직 머물고 있는 얼굴들
어렴풋이 그때 그 시절, 생각나는 얼굴들

사진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눈물이 핑 돕니다
(조병화·시인, 1921-2003)
+ 추억은 아름답게

흘러가는 시간을
비좁은 가슴에 꼭꼭 눌러넣고

아름답던 사랑을
압축시켜 마음깊이 새겨 넣어

더덕 같은 향기
두릅 같이 푸른

그리울 때 꺼내어 후-하고 불면
두둥실 빨갛게 풍선처럼 부풀어

벅찬 마음 비우고 흥겹게 살고파라
푸른 하늘 우러러 즐기며 살고파라
(김옥자·시인)
+ 양복 한 벌

당신한테 오고간 길만 감아도
양복 한 벌은 족히 나올 터

이젠 슬며시
손을 놓으셔도

내 머리 위 오리나무 하늘에
마구 길을 내는 새를 따라가셔도

가시는 숲 어디인지
주소 주지 않으셔도....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이 양복 한 벌이면
어느 마을 살아도 마음거지는 면할 터

양복 올올이 풀리는 추억만 감아도
이 생에서는 다 감지 못할 터
(감태준·시인, 1947-)
+ 추억을 위한 레시피

오늘의 요리법은 굽기예요 당신은
여태 버리지 못한 아픈 기억
하나만 들고 오세요

제대로 굽기 위해선 불 조절이 중요해요.
너무 센 불에 두면
프라이팬이 먼저 타버리지요

아픈 기억도 어쩌면 서두른 탓인지 몰라요
상대방이 마음의 문을 열기도 전에
너무 뜨거워진 당신을 들켜버린 건 아닌지

저요?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숯이 된 기억들을 버리면서
후다닥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겉이 먹음직스러우면 속이 날것이고
속이 익었다 싶으면 겉은 까맣게 타버리지요

저 여린 불꽃을 봐요
단단한 기억의 육질을 서서히 누그러뜨리는
은근함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온도가 필요한가 봐요

구수한 추억을 원한다면 먼저
당신의 심지를 조절하세요
(정경란·시인, 1970-)
+ 미루나무

미루나무 사이로 보면
고향마을이 보인다
박자 틀린 동요와
말매미소리가 들린다

가늘어 질기게 이어지는
역사보다 호사스런 그 숱한 전설에
해마다 보태지는
채송화빛 슬픈 얘기

햇살과 바람이 손잡고 모여들어
잎자루가 길어서 목이 긴 아이들과
풍금 치는 여선생의 산아래 국민학교
자전거 타고 달려가는 미루나무길 청년

이삭 줍다 먼 눈으로 짚어보던 풍경화
미루나무가 없어졌다
내 고향이 없어졌다
나의 재산이 없어졌다
(유안진·시인, 1941-)
+ 아주 오래된 기억들

손등에 때 국물 주르륵 흐르고
옷소매에는 코가 더께가 되고
구멍 난 양말 발뒤꿈치가 시려도
까만 고무신 신고 책보따리 어깨에
두르고 어매가 만들어 준
고무줄 치마에 짧은 단발머리가
잘 어울렸던 아주 오래된 기억.

아부지 지게에 한번 올라타고 싶었고
그런 딸아이의 마음을 읽은 아부지
싣던 나무 가지 다 내려놓고
어린 딸을 번쩍 들어올려 지게에 앉히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부녀가
즐거운 추억을 담았던 기억.

해거름께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강둑에 매어 놓은 염소를 끌고 들어가면
할매 우리 손주 수고했다고 밀가루 속에
묻어 놓은 엿가락을 내 놓으시고
소 풀 베러 간 언니가 논둑에 매어 놓았던
소를 끌고 들어오면
할배 속바지 주머니에서 쌈지 돈을
주시던 그 까칠한 기억.

고향 가는 길에 하늘과 나무가 다르게 보였고
몸빼 입은 동네 어른만 보아도
내 친정 부모 같아 눈가가 촉촉해지며
흙 냄새가 너무 좋아 코를 실룩거리면서
아주 오래된 기억들을 하나 둘 들이킨다.
(이향숙·시인)
+ 추억에서

라틴 음악, ´베싸메 베싸메 무초´가
´빚 땜에 빚땜에 미쳐´로 들렸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차비가 없어서
대학입학시험마저도
한 번 못보고,

고등학교 졸업하기가 바쁘게,
오두막마저
빚 때문에 날리고 말았다.

난생 처음 하는
셋방살이가 싫어,
이승의 지옥이라는
군대에 자원입대했다.

돈이 없어 대학도 못 가.
4.19 대학생 혁명 때도 안전했고,
군에 자원 입대하여
월남전 참전에 앞서 제대를 했다.

가난도 나에게는 고마운 것.
외아들인 내 목숨을 지켜주었다.

타고난 불운을 슬퍼해선 안 된다.
내게는 불운이 곧잘 행운으로 변했다.
(김시종·시인, 1942-)
+ 이 할애비가 살았던 어린 시절은 말이다

어리석은 무리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외로운 사람들이 많았단다

이어지는 흉년과 공출로 곡식을 잃고
끼니를 거르며 굶주리고 살았단다.

그러나

길을 가다가도 목이 마르면
개울물을 손바닥으로 움켜쥐어 마셨단다

젊은 여인들이 아무데서나 가슴을 열고
그들의 새끼에게 자랑스레 젖을 물렸단다

나막신 짚신도 귀찮아서
그냥 맨발로 들판을 뛰어다녔단다

어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무명·삼배
고이 적삼을 입고 살았단다

티브이도 냉장고도 자동차도 없었지만
이웃들과 오순도순 잘 지냈단다

통조림 햄버거 핏자 아이스크림 대신
칡뿌리나 찔레순을 씹으며 놀았단다
(임보·시인, 1940-)
+ 아버지의 성적표

아버지의 사랑은
먼 옛날 우리들의 놀이터였습니다.
하루해가 지쳐 넘어질 무렵
읍내 장보고 돌아오신 아버지는 약간의 취기가
있었습니다.
손에는 검정고무신 두 켤레와
약간 고돌고돌한 고등어 한 손 두 마리가
어두침침히 아버지의 손에 쥐여져 있었습니다.

밥상머리 당신 무릎에 앉혀놓고
생선 가시 골라내시면
살코기는 우리들 밥숟가락에 항상 얹어있습니다.
지금은 추억 속의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린 덥석 안겨서 아버지 등에 올라타고 어깨에
매달리면서 목마도 타고 아버지는 싱글벙글
좋아하셨던 어릴 적 기억은 잠들지 않습니다.
때론 순한 말이 되어 우리를 등에 태우고
이 방 저 방 헤집고 다니면서 우린 큰 소리로 이랴.....
구르고 막 흔들었습니다.

몇 십 년이 흘렀을까. 우린 고향을 버린 채
도시에서 도시로 떠나 흙을 잃고 살았습니다.
이젠 추억도 기억 속에 잠잠히 멀어져만 갑니다.
저는 이제야 고향에 찾아가 아버지 사랑의 성적표를
보았습니다. 점수가 없었습니다.
고향집 그 자리엔 누구를 기다리시는지 아버지의
가쁜 숨소리만 들리는 듯 방안 가득 채우고
빛바랜 흑백 사진만 벽에 걸려 옛날 그 자리
지키고 계셨습니다.
(장수남·시인, 1943-)
+ 한 대접 냉수

옛날, 내 알던 우물가, 시원한 한 대접의 물은
아직도 목에 있다.
커피나 홍차를 마시며
더욱 레지들의 석고 같은 동작을 보면
나는 아주머니의 친절이 자꾸만 그립다.
예쁜 커피잔보다
찌그러진 두레박의 푸짐한 물이 얼마나 좋았는지.

이제 나는 타기에 익숙한 두 다리와
손잡이가 좋은 낚싯대나 다름없는 도시형이 되었지만
으흐흐, 으흐흐, 짐승처럼 웃을 때가 있다.
혼자서 멍청히, 논두렁 사이로 해서 미루나무 저 아랫길, 풀이 우거진 샛길로 갈 때가 있다.
싱싱한 파줄기에는 벌이 잉잉대고
알몸으로 쏟아져오던 햇빛들

특히 잠을 설친 날 아침. 햇빛이 녹슨 철사처럼 얽혀내릴 때
옛날 내 알던 우물가, 시원한 냉수 한 대접을 마신다.
만원 버스에서나 월급 받는 날, 그때 그 냉수 한 대접을 마신다.
내 땅의 젖, 내 땅의 두레박, 내 땅의 냉수
나는 우리 가정의 나무, 우리 가정의 찌그러진 두레박, 한 대접 물이었으면 한다.
(이탄·시인, 1940-)
+ 진공관텔레비전이 있던 날의 풍경

학교 앞 문방구에 텔레비전이 놓였다
재산목록 1호를 감춘 여닫이문이 열리면 암흑이 나타났다
암흑을 다스릴 수 있는 이는 오직 한 사람
주인 아저씨가 스위치를 당기면 검은 화면 뒤에서 별 하나가 나타났다
그 순간 아이들은 보았다 암흑 속에 별을 창조하는 위대한 손끝을
괘종시계가 여섯 번째 종을 치고 나면
마침내 뽀빠이가 나타나고 서부소년 차돌이가 나타나고
황금박쥐의 망토가 힘차게 펄럭였다 해가 넘어 가면
고은아 한혜숙 남진 나훈아 장욱제 오지명 태현실 김창숙......
기라성들이 나타나 밀고 당기며 웃고 울었다
귀가시간도 잊은 아이들은 숨을 죽인 채
찬란한 별들을 저마다 가슴속에 아로새겼다
문방구의 정규방송 시간은
주인아저씨 졸음에 겨운 손끝에 달려 있었다
아직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도 아랑곳없이 스위치를 눌러버리면
캄캄한 화면 속으로 한 개 별똥별이 아득히 빨려 들어갔다
방위성금 낼 십 원, 입장료로 흔쾌히 지불했던 어린 관객들은 그제야
잠퉁이 독재자를 향해 가래침을 뱉으며 집으로 향하고
오줌을 지리던 몇몇은 바지춤을 내린 채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문방구 주인 부부가 남남으로 쪼개진 그해 겨울
아이들은 부서진 채 강둑에 버려진 텔레비전을 조립했다
손길이 어설펐으나
엄숙했다, 조물주가 우주를 빚듯
(원무현·시인, 1963-)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