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5일 금요일

김세실의 ´엄마´ 외


<엄마 시모음> 김세실의 ´엄마´ 외

+ 엄마

엄마
듣기만 해도
정겨운 이름입니다.

엄마는 자식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식지 않는 사랑을
마르지 않는 사랑을 줍니다

엄마는 나의 온 세상입니다.

빛입니다
햇살입니다
고향입니다

그러나
난 엄마를 위해
내어준 게 없습니다

때때로
엄마 눈에 깊은 눈물
고이게 하고...

엄마
언제나 불러도
샘솟는 샘물입니다
맑은 옹달샘입니다

엄마는 내 잘못
다 용서해 주시고
안아 주십니다

엄마의
그 뜨거운 사랑으로
온 세상의 불신은
환하게 녹아 내립니다.

엄마, 엄마
아름다운 별이 있는 밤
엄마 품에
포옥 안기어 잠들고 싶어요

엄마, 엄마
부를수록 충만하고
눈물이 솟구치는
가슴저린 이름입니다.
(김세실·시인, 1956-)
+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정채봉·아동문학가, 1946-2001)
+ 노근이 엄마

내 가장 친한 친구
노근이 엄마가
지하철역 남자 화장실
청소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고부터
나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오줌을 깨끗하게 눈다
단 한 방울의 오줌도
변기 밖으로 흘리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노근이 엄마가
원래 변기는 더러운 게 아니다
사람이 변기를 더럽게 하는 거다
사람의 더러운 오줌을
모조리 다 받아주는
변기가 오히려 착하다
니는 변기처럼 그런 착한 사람이 되거라
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정호승·시인, 1950-)
+ 풀꽃 엄마

왜 지금까지 평화롭게만 보이던
풀밭이 싸움판으로 보이기
시작했을까?
시들어 가는 풀섶에
모여앉아 조잘거리는
새들의 소리가 왜 노래로
들리지 않는 걸까?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까지
손아귀에 풀씨를 힘껏
움켜쥐고 있는 풀대궁
익은 풀씨들을 새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 숙인 채 안간힘을 다하는
풀대궁
얘들아 잘 가거라
그리고 잘 살아야 한다
뒷전으로 뒷전으로
땅을 향해
풀씨들을 떠나보내고 있는
풀, 풀꽃, 풀꽃 엄마.
(나태주·시인, 1945-)
+ 엄마의 전화

잠도 덜 깬 아직 이른 새벽
엄마한테서 장거리전화가 왔다
서울엔 눈이 많이 왔다던데
차를 가지고 출근할 거냐고

설마 그 말씀만을 하시려고
아니다 전화하신 게 아니다
목소리 사이사이 엄마 마음
헤아리려 가슴 기울인다

웬일로 엄마는 전화하셨나
무슨 말씀 하고싶으셨던가
창 밖은 아직 일러 어둑한데
엄마한테서 새벽전화가 왔다
(강인호·시인)
+ 엄마

검정고무신 손에 움켜쥐고
삼십리 길을 걸어왔네

엄마는 버선발로 뛰쳐나오시더니
가슴이 아리도록 끌어안으시네

˝아이구 내 새끼˝
˝아이구 내 새끼˝

돌에 채인 발이 아파와
깨끼발로 선 채로

˝엄마 배고파, 밥 주라˝
들으셨는지 못 들으셨는지

엄마는 말없이
울기만 하시네.
(공석진·시인)
+ 엄마의 푸성귀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장바닥에 앉아
채소 파는 저 할매
울 엄마 같네

울 엄마는
장날마다
푸성귀 뜯어
시장에 가셨지

엄마의 푸성귀는
내 공책이 되고 책이 되어
오늘의 내가 되었네

저 할매 보니
울 엄마가 보고 싶어
이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울 엄마

무덤가에
술 한 잔
눈물 몇 방울
뿌리는 게 고작이네.
(이문조·시인)
+ 엄마가 된다는 것

어느 날 글쎄
내가 아이들이 흘린 밥을 주워 먹고
먹다 남은 반찬이 아까워
밥을 한 그릇 더 먹는 거야
입고 싶은 옷을 사기 위해 팍팍 돈을 쓰던 내가
아예 옷가게를 피해가고
좋은 것 깨끗한 것만 찾고
더러운 것은 내 일이 아니었는데
그 반대가 되는 거야
아이가 사달라고 하면
줄서는 것도 지키지 않아
예전에 엄마가 그러면
엄마! 핀잔주며 잔소리를 했는데
내가 그렇게 되는 거야
아이가 까무러치게 울면
이해할 수 없어, 아무데서나 가슴을 꺼내
젖을 물리는 거야
뭔가 사라져가고
새로운 게 나를 차지하는 거야
이런 적도 있어, 초록잎이 아이에게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이가 아픈 거야, 그래서 공터에 가서 풀을 베다가 침대 밑에 깔아주기도 했어
엄마도 태어나는 거야
(이성이·시인)
+ 엄마, 난 끝까지

산다는 건 평생
생마늘을 까는 일이라고
엄마가 그랬어
서울이라는 매운 도시의 한 구석에서
마늘을 까며 내가 눈물 흘릴 때
작은 어촌 내가 자라던 방안에 앉아
엄마도 나처럼 마늘을 까고 있겠지
엄마는 내 부적이야
마늘처럼 액을 막아 주는
붉은 상형문자

내가
길을 잃고 어둠에 빠졌을 때
엄마가 그랬어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지만
연꽃은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엄마는 눈부신 내 등대야

등대가 아름다운 것은
길 잃은 배가 있기 때문이지
엄마가 빛을 보내 줘도
난 영원히 길을 잃을 테야
엄마, 난 끝까지 없는 길을 가겠어
(김태희·시인)
+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언제나
식기 전에 밥을 먹었었다.
얼룩 묻은 옷을 입은 적도 없었고
전화로 조용히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원하는 만큼 잠을 잘 수 있었고
늦도록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날마다 머리를 빗고 화장을 했다.

날마다 집을 치웠었다.
장난감에 걸려 넘어진 적도 없었고,
자장가는 오래 전에 잊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어떤 풀에 독이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었다.
예방 주사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누가 나한테 토하고, 내 급소를 때리고
침을 뱉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이빨로 깨물고, 오줌을 싸고
손가락으로 나를 꼬집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마음을 잘 다스릴 수가 있었다.
내 생각과 몸까지도.
울부짖는 아이를 두 팔로 눌러
의사가 진찰을 하거나 주사를 놓게 한 적이 없었다.
눈물 어린 눈을 보면서 함께 운 적이 없었다.
단순한 웃음에도 그토록 기뻐한 적이 없었다.
잠든 아이를 보며 새벽까지 깨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깰까봐 언제까지나
두 팔로 안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이가 아플 때 대신 아파 줄 수가 없어서
가슴이 찢어진 적이 없었다.
그토록 작은 존재가 그토록 많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내가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하게 될 줄
결코 알지 못했었다.

내 자신이 엄마가 되는 것을
그토록 행복하게 여길 줄 미처 알지 못했었다.
내 몸 밖에 또 다른 나의 심장을 갖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몰랐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감정인지 몰랐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그 기쁨,
그 가슴 아픔,
그 경이로움,
그 성취감을 결코 알지 못했었다.
그토록 많은 감정들을.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작자 미상)
+ 엄마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으로 배우는 말

세상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엄마....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