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11일 월요일

낡은 그림 속의 비밀

작은 원룸의 투명한 창살에 갇힌
낡은 그림 한 점,
거기 길이 보인다는 것
혹은 흙먼지 긁은 바람소리 뿐이라는 것
그 깊은 비밀을 몰래 꼭 붙든 채

딱딱한 네모진 바닥에
종이단 받쳐 애써 참는 그림 속으로
잠시 들어가는 말 없는 午後
길 끝은 우거진 풀떨기에 묻혀 까맣게 숨어있다

이미 주인 없는 텅 빈 고향집
길 바깥의 눈물이 감자 몇 알 처럼
툇마루 밥상 위에 뒹굴고
뜻밖에 찾아 간 낯선 손님에
어리둥절한 바람이 서운하지가 않다

대추나무 열매처럼 오돌오돌 자라던
아이의 들판 가득 벼이삭을 흔들어대던
푸른빛 웃음소리, 하늘에 퍼진 울림 끝 자락만
붙들고 그림 속을 빠져나오는데

어느새 발뒤꿈치를 붙잡고 나온 아이는
비밀에 불을 지피는지
끓어오르는 물 알갱이들이
눈 밖으로 마구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