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7일 목요일

이준관 시인의 ´넘어져 본 사람은´ 외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시 모음>

이준관 시인의 ´넘어져 본 사람은´ 외
+ 넘어져 본 사람은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무릎에
빨갛게 피 맺혀 본 사람은 안다.
땅에는 돌이 박혀 있다고
마음에도 돌이 박혀 있다고
그 박힌 돌이 넘어지게 한다고.

그러나 넘어져 본 사람은 안다.
넘어져서 가슴에
푸른 멍이 들어 본 사람은 안다.
땅에 박힌 돌부리
가슴에 박힌 돌부리를
붙잡고 일어서야 한다고.
그 박힌 돌부리가 나를 일어서게 한다고.
(이준관·시인, 1949-)
+ 풀포기의 노래

물줄기 마르는 날까지 폭포여,
나를 내리쳐라
너의 매를 종일 맞겠다
일어설 여유도 없이 아프다
말할 겨를도 없이 내려 꽂혀라,
거기에 짓눌리는 울음으로
울음으로만 대답하겠다
이 바위 틈에 뿌리내려
너를 본 것이
나를 영영 눈뜰 수 없게 하여도,
그대로 푸른 멍이 되어도 좋다
너의 몸은 얼마나 또 아플 것이냐
(나희덕·시인, 1966-)
+ 바람 부는 날의 풀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억센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아라

풀들이
바람 속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굳게 잡아주기 때문이다

쓰러질 만하면
곁의 풀이 곁의 풀을
넘어질 만하면
곁의 풀이 또 곁의 풀을
잡아주고 일으켜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으랴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도
바람 부는 날 들에 나가 보아라
풀들이 왜 넘어지지 않고 사는가를 보아라
(윤수천·시인, 1942-)
+ 바닥에 대하여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정호승·시인, 1950-)
+ 만나는 사람마다

오가는 발걸음
만나는 사람마다 표정이 어둡다
나는 그들에게 용기를 주는 밝은 시를 쓰고 싶다
불황의 바람은
뿌리 내리고 서 있는 나무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고통이지만
흔들리는 것은 잔가지일 뿐
뿌리는 견딜 수 있는 것이라고
태풍도 지나가면
잔잔한 고요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위로해주고 싶다
내 자신에게도 속삭여주고 싶다
(유승배·시인)
+ 맑은 날의 얼굴

그만한 고통도 경험해 보지 않고
어떻게 하늘나라를 기웃거릴 수 있겠냐구?
그만한 절망도 경험해 보지 않고, 누구에게
영원히 살게 해 달라고 청할 수 있겠냐구?
벼랑 끝에 서 있는 무섭고 외로운 시간 없이
어떻게 사랑의 진정을 알아낼 수 있겠냐구?
말이나 글로는 갈 수 없는 먼 길의 끝의 평화,
네 간절하고 가난한 믿음이 우리를 울린다.

오늘은 날씨가 맑고 따뜻하다
하늘을 보니 네 얼굴이 넓게 떠 있다
웃고 있는 얼굴이 몇 개로 보인다.
너 같이 착하고 맑은 하늘에
네 얼굴 자꾸 넓게 퍼진다.
눈부신 천 개의 색깔, 네 얼굴에 퍼진다.
(마종기·시인, 1939-)
+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뿐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구비가 다시 펼쳐져 있을 이 인생의 길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류시화·시인, 1958-)
+ 축복

고통이 바뀌면
축복이 된다기에
그 축복 받으려고
내가 평생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나는 삶을 지고 왔을까요?
절망을 씹다 뱉고
희망을 폈다 접는
그것이 고통이었습니다
그 고통 누가 외면할 수 있을까요?
외면할 수 없는 삶
그게 바로 축복이었습니다
(천양희·시인, 1942-)
+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지는 해의 힘없는 햇빛 한 가닥에도
날카로운 풀잎이 땅에 처지는 것을

그 살에 묻히는 소리 없는 괴로움을
제 입술로 핥아주는 가녀린 풀잎

오래 고통받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토록 피해 다녔던 치욕이 뻑뻑한,
뻑뻑한 사랑이었음을

소리 없이 돌아온 부끄러운 이들의 손을 잡고
맞대인 이마에서 이는 따스한 불,

오래 고통받는 이여
네 가슴의 얼마간을
나는 덥힐 수 있으리라
(이성복·시인, 1952-)
+ 들풀

방금
손수레가
지나간 자리

바퀴에 밟힌 들풀이
파득파득
구겨진 잎을 편다.
(권영상·아동문학가, 1953-)
+ 이까짓 바람쯤이야

단단한 씨앗문
머리로 밀고 나올 때
고 작은
새싹은 참 아팠겠다.

딱딱한 달걀껍질
부리로 깨고 나올 때
고 작은
병아린 참 힘들었겠다.

그런데 뭐
그런데 뭐
이까짓 꽃샘바람쯤이야.

바람 속 꽃눈이
이를 악문다.
(오은영·아동문학가, 1959-)
+ 동거

진주가 보석으로서 이름값을 하는 것은 조개라는 숨은 배경이 있
었기 때문이다.

모나고 보잘것없는, 고통의 씨앗인, 어쩌면 원수 같은 모래 한 알
을 내뱉지 못하고 기어이 몸속 손님으로 받아들인 조개의

저 아름다운 동거!

제 피와 살점을 뜯어 먹여 마침내는 완벽한 진주로 키워내고야 마
는 조개의

저 지독한 사랑이여!

그러므로 조개는 진주의 밥이요 집이요 아내요 어머니요 모든 것
이다. 이름 없는 조개는 이름 있는 진주의 진짜 이름이다. 상처 난 조
개만이 진주를 품을 수 있다. 진주의 중심엔 언제나 조개의 고통이
스며 있다.
(김선태·시인, 1960-)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헨리 데이비스의 ´가던 길 멈춰 서서´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