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4일 목요일

칼의 이유

손에 칼을 잡은 이유를
처음에는 몰랐다
더 큰 과실을 맺게 하려고
뼈와 살갗을 베어버린 이유를
나중에야 알았다
당신과 나, 피아간에
잡은 손목을 끊거나
엉킨 발목을 자르거나
칼이 사랑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칼을 든 손이 너무 많았다
움직일 수 없게 숨을 죄고
밤을 낮으로 알게
불 환하게 켜놓은 것도 칼일 것이다
자라지 못하게
철사로 팔 묶은 것도 칼 아닐까
뿌리 그대로 남겨놓고
톱으로 목 베어놓은 것도
칼의 짓이다
갓 건져 펄펄 뛰는 생물을
난도질한 것을 보았다
살아있는 몸에 칼을 대었다
살 속에 깊은 금을 그었다
칼이 망나니로 춤추고 있었다
칼은 단지 침묵하고 있었는데
칼을 든 손이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칼을 든 마음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칼이 움직일 때마다
살점이 뚝 뚝 떨어져 나갔다
귀신처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한다고 칼을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