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4일 목요일

계시

십이월 남산에 가서
노란 꽃 핀 것을 보고
붉은 열매 맺힌 것을 보고
검은 새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아하, 저 한 줄 뜻을 알겠다
종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날이 다가왔다고
십이월을 봄날같이 만들어서
꽃 구경하러 나오거나
열매 얻으려고 나오거나
세 소리 들으려고 나오거나
아직 덜 녹은 눈길 사이로
화창한 햇살 비추며
주인같이 계시를 하시네
오늘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목숨의 시작이라고
생명이 탄생하는 시간이라고
하늘과 땅 사이의 혈관으로
피가 사방으로 돌고 있다
해의 팔에 힘이 불끈 솟고
달의 숨이 가빠지고 있다
별의 눈빛이 더욱 반짝인다
허공에 울굿불굿 꽃이 만발했다
지하에 열매가 지천으로 달렸고
물속에서 새가 자유로이 날아다녔다
십이월 이십사일이었다
또 다른 세상이 분명 열린 것이다
누군가의 계시처럼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