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마처럼 활짝 펼쳐진
엷은 비단 꽃잎 가장자리에
우유빛 발레복을 입은 어린 무희가
타이쓰 신발끈을 매고 있습니다
가을날 오후의 햇살에
밝아진 표정, 뜨락의 풀잎들 일어서고
담벼락 아래 그늘진 구석 풀잎들
훌쩍이며 다시 드러누울 때
저 못 잡을 꿈을 타고 내려오는 햇살
시시각각 달라지는 체위로 받으며
여릿 여릿한 속살거림을
내 몸 안에 풍부하게 녹여냅니다
멀리 창백한 안개숲 헤치고
들려오는 팬플룻 소리 맞이하기 위해
일어서서 조심 조심 발 끝으로
풀밭 위로 걸어가는 환상의 무희처럼
매번 시선의 위치를 바꾸고
몸 자세를 새롭게 한 다음
한낮의 신이 든 손전등 앞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가을 꽃잎처럼
가을꽃시계는 이렇게 풍부한 빛깔입니다
짙고 옅은 삶의 표정들
허공에 알록 달록 심다가 지치면
서둘러 사라지는 발걸음이라 하여도
책임 없는 바람의 아첨에도
발바닥을 두드리는 햇살의 장난끼에도
멀리 나뭇가지에 매달린 생의 열매는
종일 단맛을 만들어내기에 바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