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등 돌린,
내 앞을 가로막고 선
담벼락의 장미꽃을 향하여
뽑아 들었던 칼을
겨누었던 총을 내려놓고
결정의 밤을 맞이하련다
해가 질 때까지 금식이다
물조차 입에 대지 않겠다
침조차 삼키지 않겠다
빛나는 구월의 달에게서
길 열리는 계시를 받아서
바위의 문을 열고
폭풍의 사막이나 거친 황야를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순교의 왕국 세워서
맹세한 달의 칼날과 총알로
붉은 피의 꽃 핀다면
목이 순식간에 베었으면 한다
폐에 검은 구멍이 뚫렸으면 한다
부서진 달빛 주검을 밟고
꽃대 같은
기둥을 다시 일으켜 세우마
아니 펄떡이는 목숨을 짓밟고
무쇠 같은
벽을 흔적없이 무너뜨리마
성스러워라, 오늘 밤 아라비아에
날 시퍼렇게 뜬 달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