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8일 일요일

유리를 깨뜨리다

이 세상은 유리가 지배할 것이니
칼이나 검보다 더 날카로운
유리에 베이지 않도록 조심하라
유리를 밟지 말아라
가슴에 유리를 품고 있지 말아라

바닷가 해변의 바위로 시작하여
저토록 작은 모래가 되어
불가마 속 억겁 지옥에서 달궈진
저 투명한 널판지로 만든 뇌가
허락도 받지 아니하고
우리들의 정신에 수시로 침입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유리 속에 갇혀있다
유리창의 우리 속에 가둬둔
동물원 원숭이가 우리들이다
어두운 밤 유리창에 비친 낯선 가면이
바로 우리들의 얼굴이다
유리창을 깨뜨린다
너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강이나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는
비무장지대 같은 것이나
안쪽과 바깥쪽, 앞과 뒤,
끊어버리는 개혁이냐 뒤집어버리는 혁명이냐
공산주의냐 민주주의냐
진보냐 보수냐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는
마음 같은 것이나
안보이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틈
담과 벽 사이 꿈과 꿈 사이
죽음과 삶 사이를 깨뜨린다
해와 달이 밝음과 어둠을
계절에 맞추어 피고 지는 것을
사랑하고 이별하고 오고 가는 것을
물과 불을 가르는 것을 깨뜨린다
유리 속의 나와
유리 바깥의 나를 깨뜨린다
번쩍이며 빛나는 유리의 조각들
모래 알갱이들 눈에 박히면
세상의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