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 주었다
내 집 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 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다
- 류시화의《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중에서 -
때때로 이런 '나무' 같은 존재가 그립습니다.
여기저기 인생길을 기웃거리며
총총걸음으로 움직이지만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 우주의 중심처럼
늘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늘 그 자리에 뿌리 박고 서서 나를 지켜주고
받아들이는 나무! 말없는 자연의 스승입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시인의 눈도 위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