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9일 일요일

복효근의 ´목련에게 미안하다´ 외


<목련 시 모음> 복효근의 ´목련에게 미안하다´ 외

+ 목련에게 미안하다

황사먼지 뒤집어쓰고
목련이 핀다

안질이 두렵지 않은지
기관지염이 두렵지도 않은지
목련이 피어서 봄이 왔다

어디엔가 늘 대신 매 맞아 아픈 이가 있다
목련에게 미안하다
(복효근·시인, 1962-)
+ 목련

목련 피는
봄이 좋습니다.

잎도 없이 꽃만 피는 목련이
가난해 보여서 좋습니다.

하얗고 투박한 꽃잎이
울 엄마 무명치마 같아서
좋습니다.

올해도 목련꽃
눈물겨워서 좋습니다.
(최해걸·아동문학가)
+ 백목련

추운 겨울동안
꽁꽁 덮었던
무거운 솜이불을
잘게잘게 뜯어

빈 가지 가지마다
하얗게 늘어서
봄볕에 말리고 있다는 걸
남들은 알까? 모를까?
(강현호·아동문학가)
+ 목련 그늘에 서면

소꿉친구와의
오래된 약속 같은
무언가를
잊어버린 듯
잊어버린 듯…….

잊어버린 것 같은
무언가가
어쩌면
생각날 듯
생각이 날 듯…….
(손광세·시인, 1945-)
+ 산 목련

깊은 산 속에
인간이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잔치가
열리나 보다

고요한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기에
저토록
순백의 얼굴을 한
귀부인이 납시었을까

고고한 자태 위에
천상의 향이 내려와
소담스런 관을 씌운다
(이경자·시인)
+ 목련

내 어릴 적
어머니
분 냄새난다

고운 입술은
항상
말이 없으시고도

눈과 눈을
마주치면
애련히
미소지으시던

빛나는 치아와
곱게 빗어 올린
윤나는 머릿결이,

세월이
너무 흘러
무정하게도

어머니 머리에는
눈꽃이 수북히
피어났어도

추운 겨울 지나고
봄볕 내리는
뜨락에

젖빛으로
피어 앉은 네
모습에선

언제나
하얀
분 냄새난다
(홍수희·시인)
+ 나의 목련

나는 목련을 지고 난 후에 본다
후회하는 사랑이 그렇듯이

담장 위에 기다랗게 목울대 올려 피어난
그 환하고 고결한 자태를
왜 제때 바라보지 못했을까

담장 아래를 수없이 지나다니면서도
고갤 들지 못하고
속절없는 생각만 하다가

사월도 가고 목련도 지고
내 사랑은 후회하는 사랑이다
(이만섭·시인, 1954-)
+ 목련꽃

집 앞에
목련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키가 좀 크고 가지가 적은 나무는
백목련

키가 좀 작고
가지가 많은 나무는 자목련이다

해마다
목련 철이 되면
도제가 와서
목련꽃 시를 쓴다면서
반나절씩
꽃나무 밑에 섰다가 가곤 했다,

금년에는
꽃이 다 지고 말아도
시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울고 있었다.
내가 아니고
꽃나무들이다
눈물도 울음소리도 없이 우는
목련꽃 나무

시인이 간 그 나라에도
목련꽃이 피어 있겠지

내게 그 소식
전해 달라
시인아.
(황금찬·시인, 1918-)
+ 목련 이력서

개봉되자 버려진 이력서처럼
피자마자 봄이 간다
올해도 마지막처럼
가지 끝에 부풀어
뽀얀 주먹 두 개를 푸른 하늘에
내밀고 있다 스무 해 서른 해
온힘 다해 밀어 넣어도
한 번도 꼼꼼히 읽히지 않은
목련꽃의 이력이 저 주먹 안에 있겠다
아무 배경 없이도 순결한
심성만 있다면 이 세상
화사한 꿈에 닿을 수 있다 믿는
어느 처녀가장
4월 하늘이
흰불꽃회오리 그 주먹 안에
허공 두 줌을 쥐어 주고 있다
(이해리·시인, 경북 칠곡 출생)
+ 목련이 질 때

양철 쪼가리 녹슬 듯
하나 둘 떨어지고
한 송이에 꽃잎 하나 남았을 때
보아라, 꽃이 저렇게 진다
-허리 구부러진 할아버지 담배를 피우다가 무슨 말엔 듯 활짝 웃는 그 얼굴처럼, 그 얼굴의 뿌리처럼

녹슬어서도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어제의 흰 목련
보아라, 진다는 게 저렇다
매달려 누구의 눈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루라도 더 버팅기는
목련

나는 한번 활짝 피었으니
후회하지 않고 죽겠노라고
말할 수 없다
(이성이·시인)
+ 목련

뼈만 남은 손가락이 가지를 움켜잡고 있었다
다정했던 목련, 지는 모습이 이랬다
볼이 움푹 팬 병색 짙은 몰골로
자신의 전부를 갉아먹고 있었다
활짝 핀 함박눈처럼
세상을 끌고 올라가던 목련은
순백의 기억을 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동백처럼 삶이 가장 요염할 때
선혈이 낭자하게 자신을 뚝뚝 던져 버리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보여주며
추억을 되돌려가는 미련한 꽃
제가 얼마나 아늑하고 환한 시간을 밝혔는지 모르고
꽃 진 가지에 가장 누추한 기억 한 줄 걸어 두었다
(이영옥·시인, 1960-)
+ 목련꽃이 지는 날에

색채의 절대 권력인 듯
눈부신 순수의 빛으로

세상의 한 모퉁이를
당당히 점령했던 목련꽃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며
봄날은 간다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는 아는가

목련이 지면
한 계절이 사라질 뿐이지만

오!
당신이 내 곁을 떠난다면

나의 온 생애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정연복·시인, 1957-)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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