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일 목요일

번지 없는 소리들

구름이 후퇴한 하늘은
정갈한 맵시로 저수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따금 어린 바람이 장난을 걸어오면
고운 물청이 못이긴 체 길을 틔워주고 있었다
초가 용마루엔 눈이 소복하고
머리수건 끌러 어머니는 툭툭 어깨를 털고
아침 햇발이 툇마루 끝을 들어서네
아이들 등쌀에 아래정지 동 솥에 술 빵이 익어 갈 때
한티재 넘어 시집간 큰 성아
적삼 섶이 벼루빡처럼 붙어 삽작을 들어서네
수수깡같은 아이가 빈 젖을 물고 늘어지니
뼈다귀뿐인 딸년 손잡고 어머니 통곡하시네

누룩 내 풀풀 나는 술 빵 씹는 성아를
아버지는 죽어도 그 집 귀신이라며
구루마에 큰 성아 쳐 얹어 싣고
미루나무 건들대는 신작로에서
죄 없는 도짓소에게 매질을 하시네
물청은 견딜 수 없어 울음을 터트리고
낮 달이 이리 근뎅 저리 근뎅 춤을 추자
아버지 메꼬모자 둥둥 떠가고
허겁지겁 모두가 떠나 버렸다
산도 길도 흩어지고
고향은 탯줄도 찾을 길 없구나
아,
번지 없는 고향

슬픔의 소리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