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3일 월요일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

문을 박차고 나왔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창백한 눈만 꿈틀거릴 뿐
어둠 속엔 아무도 없다.

정처없이, 언덕의 집들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걸으며 나는 모른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집집마다 켜진 등불 사이로 비친
사람들의 모습은 정겹다.

저 앞에 한 무리의 검은 물체들이 보인다.
부부싸움 뒤의 우울한 나의 걸음이
그들에게 불미스런 빌미가 될 수도 있겠다싶어
무슨 급한 볼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걸음을 서둘러 위장한다.

술취한 그들이 예상외로 얌전하다.

어느 새, 한기가 뼈 속까지 침투한다.
정신없이 나온 나의 얇은 옷차림에
바다바람과 진눈깨비는 너무 잔인하다.

부두가 보인다.

바닷물이 높게 일렁이고,
나의 서러운 마음도 높게 일렁인다.
세상에 혼자 깨어있는 쓸쓸함.
이국에서의 삶을 하소연할 상대가 없는
오래묵은 침묵.

바닷물이 손짓한다.
“이리와, 내가 위로해줄게”
“…이리와”
나는 한참을 바다와 갈등했다.

그러다 모진 목숨을 안고
바보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집에 없다.
1시간이 흘러 돌아온 그는
흠뻑 젖어있다.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그가 나를 안으며 운다.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그는 나를 안고 울고 있다.

“생활이 힘들어도 살아내자”
그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아무 대꾸도 못했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