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갈아 정갈해진 정적 몇 방울로 편지를 쓴다 
  어둠에 묻어나는 글자들이 문장을 이루어 
  한줄기 기러기 떼로 날아가고 
  그가 좋아하는 바이올렛 한 묶음으로 동여맨 
  그가 좋아하는 커피 향을 올려 드리면 
  내 가슴에는 외출중의 팻말이 말뚝으로 박힌다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그의 먼 안부 
  동이 트기 전에 편지는 끝나야 한다 
  신데렐라가 벗어놓고 간 유리구두처럼 
  발자국을 남겨서는 안 된다 
  밤에 쓰는 편지는 알코올 성분으로 가득 차고 
  휘발성이 강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가 깨어나 창문을 열 때 
  새벽 하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푸르러야 한다 
  맑은 또 하나의 창이어야 한다 
  오늘도 나는 기다린다 
  어둠을 갈아 편지를 쓰기 위하여 
  적막한 그대를 호명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