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 같은 안개를 헤치고
지하 동굴로 몰려드는 아비들
오늘은 결집의 날이라고
수레에 실은 生을 끌면서
하루 밥벌이 하러 간다
덜컹 쇠가 움직여 달아난다
당신 하나가
내게 오백의 나한으로 보여
세상을 구원할 차례다
굵은 팔다리를 움직였으니
몇 사람의 입술이 움직였겠다
피눈물 흘렸으니
몇 사람의 심장이
또 가쁘게도 뛰었겠다
우렁차게 바퀴가 굴러간다
밧줄에 매달려 유리창을 닦고 있는
아비들이 열반에 들었다
허공에 서서 벽을 쌓고 있는
아비들이 적멸에 들었다
나한 같은 아비들의 노동으로
세상의 피가 돌고 맥박이 뛴다
험한 세월의 파도에 부딪혀
뼈 한 귀퉁이가 닳고
살 떨어져 나간 아비들
올 겨울 이겨낼 양식으로
몇 사람 또 살려낼 터이니
꽃 진 얼굴이 비로소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