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石榴)
나도 그렇게 터질 줄 몰랐다
그래도 이별인데 가슴앓이조차 없으랴
어찌 짐작조차 못했을까마는
며칠도 못 참아 쩌억 쩍 가슴 가르는가
피톨은 울겅울겅 토해놓은 그리움을 짓이겨
사리(舍利)를 만들고 있다
그렇게 내 몸은 한 개 석류가 되어 가는데
무심한 이웃들은 내 그리움을 씹어가며
생청 붙일 일 따로 있지
장대로 하늘 잴 수 있나
희뚝머룩한 신소리들을 쏟아 내고 있다
동강난 가슴은 울가망 부리며 울고 있다
칼로 베인 상처야 할퀸 상처야
딱지 지면 그만인데
가슴 저리는 이 슬픔은 딱지도 내리지 아니하면서
왜 이리 다랑귀뛰어라 보채는가
켜켜로 쌓인 그리움을 끌어안고
바람만바람만 뒤따라가는가
정(精)다실 만도 하련만
그리움은 조각난 흔적들을 찾아내 쪽을 찌고
가슴에 남은 빈 발자국들을 지워내며
꺼져가는 불씨에 풀무질하고 있다
잊어버린다더라도 아주 잊혀지기야 하겠느냐
그리움은 떼알처럼 그리움을 슬고 있다
그리움은 시간의 변두리에서
내 육신에 당신의 허물을 덮고 있다
이리 심줄 질긴 인연이라면
차라리 내 발목을 묶어버려도 좋으리라
촛농처럼 녹아내리는 인연에
당신은 꽃향기 되어 피어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 몸에선
꽃향기가 묻어 나고
향기는 다림줄 되어
내 의지를 시험하고 있다
이제 석류는 다시 꽃을 피워낼 텐데
피톨은 울겅울겅 그리움을 토해낼 텐데
그래, 그렇다 치자
정(精)다시지 못해 윤회의 나락에 떨어진다 치자
사랑을 피워내지 못한다면 꽃을 피운들 무엇하랴
사랑을 동강낸다면 온전한 가슴을 꿈꾸어 무엇하랴
불기둥처럼 치솟는 그리움에 나를 실어 보낸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당신 보시기에 좋았다)
(후기)
- 피톨
핏방울
절절한 모습의 상징
연분홍 복사꽃 아득한 사랑얘기
진자주 모란꽃의 피톨 튀던 사연들
어디를 헤매이다 하얗게 늙어서 돌아오는 눈발 속에
(유안진, ′눈을 맞으며′)
- 생청
생판으로 쓰는 억지나 떼
생떼
과부댁 종놈은 왕방울로 행세하고, 관가 종놈들은 생청으로 행세한다 등마는 옛말 그른 데 없구만. 여보게, 자네들 눈구멍은 뽄보기로 달고 댕기는가.
(송기숙, ′녹두장군′)
위 글에서 『등마는』은『더니만』의 전라도 사투리
『뽄보기』는 『본보기』에서 나온 말이나, 『멋으로』의 의미가 담긴 전라도 사투리
- 울가망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얼굴을 찡그리고 기분이 나니 않아 하는 일
˝글쎄, 언제가 사날이란 말이오.˝ 하고 주름잡힌 이맛살에 화가 다시 치밀지 않을 수 없다. 이놈의 사날이란 석 달인지도 삼 년인지도 영문을 모른다. 그러나 저쪽도 쾌쾌히 들어덤벼야 말하기 좋을 텐데, 울가망으로 한풀 꺾이어 들옴에는 더 지껄일 맛도 없는 것이다.
(김유정, ′따라지′)
- 희뚝머룩하다
희떱고 싱겁고 탐탁하지 못하다
- 다랑귀뛰다
들어붙어 조르며 안 떨어지다
두 손으로 매달려서 놓지 않다
『다랑귀뛰며 보채다』의 다른 표현은 『달게 굴다』
- 바람만바람만
바라보일 만한 정도로 뒤에 멀찍이 떨어져 따라가는 모양
발맘발맘
조금 떨어져서 그녀를 바람만바람만 뒤따라간다
(송기숙, ′녹두장군′)
- 정(精)다시다
욕이나 수모를 당하여 정신을 차리다
위인이 코끝으로 흐르는 피멍을 훌쩍 들이마시면서, ˝제발 나를 풀어 주오. 아이구 종매부님, 나 죽소.˝
˝이놈, 응판색이라는 종매부를 찾는 걸 보니 아직 정을 다시지 못한 모양이구나. 개전할 기미가 전연 보이지 않으니 풀어 줄 수 없다.˝
(김주영, ′客主′)
- 다림줄
다림을 보는데 쓰는 줄
『다림』은 『수평이나 수직의 상태를 알아보는 일』을 뜻한다
구약성경에서는 『다림줄』을 은유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스갸라 4:10, 아모스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