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5일 수요일
나태주 시인의 ´풀꽃´ 외
<들꽃을 노래하는 시 모음> 나태주 시인의 ´풀꽃´ 외
+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시인, 1945-)
+ 풀꽃
세상길 오다가다
나도 법문 같은 개소리
몇 마디쯤 던질 줄은 알지만
낯선 시골길
한가로이 걷다 만나는 풀꽃 한 송이
너만 보면 절로 말문이 막혀 버린다
그렇다면
내 공부는 아직도 멀었다는 뜻
(이외수·소설가, 1946-)
+ 풀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풀이 되어 엎드렸다
풀이 되니까
하늘은 하늘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햇살은 햇살대로
내 몸 속으로 들어와 풀이 되었다
나는 어젯밤 또 풀을 낳았다
(김종해·시인, 1941-)
+ 들풀
세상이 싫고 괴로운 날은
바람 센 언덕을 가 보아라
들풀들이 옹기종기 모여
가슴 떨고 있는 언덕을
굳이 거실이라든가
식탁이라는 문명어가 없어도
이슬처럼 해맑게 살아가는
늪지의 뿌리들
때로는 비 오는 날 헐벗은 언덕에
알몸으로 누워도
천지에 오히려 부끄럼 없는
샛별 같은 마음들
세상이 싫고 괴로운 날은
늪지의 마을을 가 보아라
내 가진 것들이
오히려 부끄러워지는
한 순간
(이영춘·시인, 1941-)
+ 족필(足筆)
노숙자 아니고선 함부로
저 풀꽃을 넘볼 수 없으리
바람 불면
투명한 바람의 이불을 덮고
꽃이 피면 파르르
꽃잎 위에 무정처의 숙박계를 쓰는
세상 도처의 저 꽃들은
슬픈 나의 여인숙
걸어서
만 리 길을 가본 자만이
겨우 알 수 있으리
발바닥이 곧 날개이자
한 자루 필생의 붓이었다는 것을
(이원규·시인, 1962-)
+ 들풀
방금
손수레가
지나간 자리
바퀴에 밟힌 들풀이
파득파득
구겨진 잎을 편다.
(권영상·아동문학가, 1953-)
+ 작은 풀꽃
후미진 골짜기에
몰래 핀 풀꽃 하나
숨어 사는 작은 꽃에도
귀가 있다.
나직한 하늘이 있다.
때때로
허리를 밀어 주는
바람이 있다.
초롱초롱 눈을 뜬 너는
우주의 막내둥이.
(박인술·아동문학가)
+ 풀꽃의 노래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
바람이 날 데려가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하고 싶은 모든 말들
아껴둘 때마다
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
너무 작게 숨어 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기다리는 법을
노래하는 법을
오래 전부터
바람에게 배웠기에
기쁘게 살 뿐이야
푸름에 물든 삶이기에
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이해인·수녀, 1945-)
+ 들꽃 같은 시
그런 꽃도 있었나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이 더 많지만
혹 고요한 눈길 가진 사람은
야트막한 뒷산 양지바른 풀밭을 천천히 걷다가
가만히 흔들리는 작은 꽃들을 만나게 되지
비바람 땡볕 속에서도 오히려 산들산들
무심한 발길에 밟히고 쓰러져도
훌훌 날아가는 씨앗을 품고
어디서고 피어나는 노란 민들레
저 풀밭의 초롱한 눈으로 빛나는 하얀 별꽃
허리 굽혀 바라보면 눈물겨운 작은 세계
참, 그런 눈길 고요한 사람의 마을에는
들꽃처럼 숨결 낮은 시들도
철마다 알게 모르게 지고 핀다네
(조향미·시인, 경남 합천 출생)
+ 작은 들꽃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나 나나 이 세상에선
소유할 것이 하나도 없단다
소유한다는 것은 이미 구속이며
욕심의 시작일 뿐
부자유스러운 부질없는 인간들의 일이란다
넓은 하늘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소유라는 게 있느냐
훌훌 지나가는 바람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애착이라는 게 있느냐
훨훨 떠가는 구름을 보아라
그곳에 어디 미련이라는 게 있느냐
다만 서로의 고마운 상봉을 감사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존재를 축복하며
다만 서로의 고마운 인연을 오래오래
끊어지지 않게 기원하며
이 고운 해후를 따뜻이 해 갈 뿐
실로 고마운 것은 이 인간의 타향에서
내가 이렇게 네 곁에 머물며
존재의 신비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짧은 세상에서
이만하면 행복이잖니
사랑스러운 작은 들꽃아
너는 인간들이 울며불며 갖는
고민스러운 소유를 갖지 말아라
번민스러운 애착을 갖지 말아라
고통스러운 고민을 갖지 말아라
하늘이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대지가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구름이 늘 너와 같이하고 있지 않니
(조병화·시인, 1921-2003)
+ 들꽃
찬바람 불어오는
겨울 문턱에서도
꽈악 끼어 붙은
보도 블록 사이에서도
들꽃 한 송이는
피어납니다.
(김창근·시인)
+ 들꽃에게
어디에서 피어
언제 지든지
너는 들꽃이다
내가 너에게 보내는 그리움은
오히려 너를 시들게 할 뿐,
너는 그저 논두렁 길가에
피었다 지면 그만이다.
인간이 살아, 살면서 맺는
숱한 인연의 매듭들을
이제는 풀면서 살아야겠다.
들꽃처럼 소리 소문 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었다 지면 그만이다.
한 하늘 아래
너와 나는 살아있다.
그것만으로도 아직은 살 수 있고
나에게 허여된 시간을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냥 피었다 지면
그만일 들꽃이지만
홑씨들 날릴 강한 바람을
아직은 기다려야 한다.
(서정윤·시인, 1957-)
+ 나누기
풀꽃의 어깨가 차가워지고 있을 때
해님은 따스한 체온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기운 차린 풀꽃은 지친 꿀벌을 불러
˝쉬었다 가렴˝
예쁜 꽃 의자를 내어 주었습니다.
꿀벌은 마당 한쪽 빌려 준 할아버지에게
꿀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심효숙·아동문학가)
+ 더하기
들이 심심해하고 있을 때
꽃이 한 송이씩 피었습니다.
들의 눈길이 온통 그리로 쏠리고
들의 귀가 온통 그리로 열렸습니다.
꽃이 심심해하고 있을 때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꽃들의 눈길이 온통 그리로 쏠리고
꽃들의 귀가 온통 그리로 열렸습니다.
들과 꽃은
셈을 시작했습니다.
더하기 고요함
더하기 평화로움
더하기 아름다움…
온통 더하기 더하기만 했습니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잠시 눕는 풀
풀은 조용하다.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 뿌리의 정적 쪽으로
마음을 눕히고 풀은 조용하다. 바람은
흐린 하늘을 쓴 소주처럼 휘저으며
벌판을 들끓는 아픔으로 흔들며
온다. 흔들리지 않으려는 것과
흔들며 지나가는 것 사이의
긴장은 고조된다. 시간은
어디론가 숨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바람은 오고
잠시 풀은 눕고,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것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의
풀은 지나가는 바람에 몸을 눕히지만
끝내 바람은 흙 속에 숨은
풀의 흰 뿌리를 흔들지 못한다. 종일을
빈 벌판은 푸른 모발을 날리며
엎드려 있고 종일을 빈 벌판은
통곡을 하며 엎드려 있고
또 다시 바람은 불어오고
풀은 잠시 눕고 다시 풀은
일어서며 풀은 조용하다
(장석주·시인, 1954-)
+ 들풀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 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류시화·시인, 1958-)
+ 들꽃의 노래
유명한 이름은
갖지 못하여도 좋으리
세상의 한 작은 모퉁이
이름 없는 꽃이 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몰라봐도 서운치 않으리
해맑은 영혼을 가진
오직 한 사람의
순수한 눈빛 하나만
와 닿으면 행복하리
경탄을 자아낼 만한
화려한 꽃은 아니더라도
나만의 소박한 꽃과 향기로
살며시 피고 지면 그뿐
장미나 목련의 우아한 자태는
나의 몫이 아닌 것을
무명(無名)한
나의 꽃, 나의 존재를
아름다운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가리
(정연복)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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