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13일 목요일
칡
칡
어제 갔던 길 오늘 가고
오늘 갔던 길 내일도 가얀다더라도
우리 만남은 항상
설면설면한 마주침으로 시작된다
하루 지나고 이틀
이틀 지나고 사흘
마주치는 눈빛이 익어가면서
서로의 가슴에는 씨앗이 뿌리내린다
어제 보이던 당신이
오늘은 어찌 진종일 보이지 않아
마주칠 눈길 찾지 못한 가슴은
객쩍게 웃음 터뜨리며 안달음 놓고 있다
가음은 어제보다 더 큰 자리 만들어
가슴에 당신을 들이 앉히고
빈자리 당신에게
느닺없이 얽히사살을 털어놓고 있다
이런들 어때요
저런들 어때요
칡넌출 타고 내려
어우러지면 어때요
당신 날실 되고 나 씨실 되어
청올치로 노 만들어
구만리 장천(長天) 가는 해
잡아매면 어때요
일단 풀어버린 인연 실타래는
칡넝쿨처럼 당신을 향해 기어오르고 있다
낭 위에 비알 위에 어린 당신 흔적에
몸을 비비꼬며 얽으러지며 주룩비 내리고 있다
당신도 모르는 새
내 손끝에 당신은 배동 오르고
상상임신의 날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때요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린들 어때요
아무래도 내일 마주칠 당신에게
붉어질 얼굴 감추어야겠다
공연스레 흰 덧칠하며
바득하게 고인 물
가슴에서 비워내고 있다
첫사랑은 이렇게 영글고 있다
(후기)
- 설면하다
자주 못 만나서 좀 설다
(사귐이) 그리 정답지 아니하다
- 가음
감
감히 하려고 하는 생각
혼자서는 감을 못내던 일도 여럿이 힘을 합하면 아니 되는 일이 없다.
장꾼이 서넛만 와도 감을 못 내서 떠는 것보다 그대로 보내는 것이 더 많았었고
(홍명희, ′임꺽정′)
어떤 約婚한 총각이 제 아네 가음의/
비밀지키기 능력을 시험해 보려고
(서정주, ′포르투칼의 <에스트렐라>山의 仙女께서 나오시어 말씀하시길′)
- 청올치
겉껍질을 벗겨 낸 칡덩굴의 속껍질
노나 베를 만드는 감으로 쓰인다
- 노
실, 삼, 종이 따위로 가늘고 길게 비벼 꼰 줄
- 얽히사살
얽히고 설킨 사살
『사(辭)살』은 잔소리로 재깔이며 늘어놓는 말
네 사살 들으러 온 것이 아니요, 너도 나를 시비할 때가 아니다
(현상윤, ′재봉춘′)
- 낭, 비알
낭떠러지, 비탈
- 배동오르다
싹이나 이삭이 오르려고 할 때 배가 볼록해지는 현상
식물에 쓰는 용어이나 사람에 대해 써 보기로 했다
폭설이 내린 후/ 꽃이 피는 것을/
배동오른 가쟁이 껍질을 찢고 또 찢고/ 꽃이 피는 것을/
꽃이 피는 것을
(추영수, ′하늘을 날고 싶을 땐′)
- 바득하게
가득하여 넘쳐 흐를 듯하게
바득하게 고인 물의 팽창한 水面을
(박목월, ′넥타이를 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