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9일 일요일

화로火爐

박물관 유리 진열대 안에
구리빛의 사내 하나
목발 딛고 서서
가까스로 세상 떠받치고 있다
얼음처럼 차가운 저 육신이
손대기도 어렵게
불로 펄펄 끓었던 때가 있었겠다
밤새도록 뜨겁게 살아 있어서
한 겨울 몰아치는 삭풍에도
가계家系를 지켜주었겠다
노동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손발을 풀어주고
무덤 속의 관 같았던
눈과 입을 열어 주었겠다
이 강산 들불처럼 행진하며
붉게 달아올랐던 저 사내
가슴에 가득 들어찼던 격정激精이
한 순간에 썰물처럼 쓸려나갔다
저 사내의 머릿속이 궁금해
유리 속으로 얼굴을 들이미니
따스한 온기가 전해진다
잠깐 불 꺼졌다고
유물처럼 모셔두지 않겠다
나를 만들어 놓고 늙어버린 사내
내 눈에는 아직도
불씨 남아 있는 것 같아서
활활 치솟는 불길 전해주고 싶은
화로 같은 내가 또 그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