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2일 토요일

정연복의 ´꽃샘추위´ 외

<꽃샘추위에 관한 시 모음> 정연복의 ´꽃샘추위´ 외

+ 꽃샘추위

이별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 것

겨울 끝자락의
꽃샘추위를 보라

봄기운에 떠밀려
총총히 떠나가면서도

겨울은 아련히
여운을 남긴다

어디 겨울뿐이랴
지금 너의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 보라

바람 같은 세월에
수많은 계절이 흘렀어도

언젠가
네 곁을 떠난
옛 사랑의 추억이
숨결처럼 맴돌고 있으리
(정연복·시인, 1957-)
+ 꽃샘추위

꽃밭에 얼굴을 부비며
빈 꽃가지를 흔들며
또 그렇게 지나야 하는 겨울,
그 비바람을 막을 수는

― ― 없다.

조금씩 조금씩
뒤안길을
보듬어 스스럼 열며
꽃철을 맞아 사위어져 가는

― ― 최후의 만찬.
(구재기·시인, 1950-)
+ 꽃샘추위

인사를 빠뜨려서
되돌아 왔나

아랫목 이불 속이
그리워졌나

3일만 묵겠다고
아양을 떤다

어차피 한 번은
떠나야 하는 걸

갔다가 나중에
다시 오면 되는 걸

미적미적 하다가
막차 놓칠라
(김옥진·시인, 1962-)
+ 꽃샘추위

봄 햇살 따스한데
속이 비고 허약한 이는
썰렁하다 합니다.

봄이라고 앞다퉈 꽃이 피는데

진눈깨비
내리니
꽃샘추윈가 봐요

날씨보다
가슴이 시리면
더 춥다 하네요.

꽃샘추위
지나고 나면
예쁜 꽃이 피겠지요.
(하영순·시인)
+ 꽃샘추위

아직 참으라 하네.
다시 살펴
화룡점정하고
기다리라 하네.

봄으로 가는
마지막 시련
옷고름 여미고
조금만 더 버티라 하네.
(강신갑·시인, 1958-)
* 화룡점검: [畵龍點睛]: 사물의 긴요한 곳에 손을 대어 전체를 완성시킴.
+ 꽃샘추위

나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봄볕 속으로
훌쩍 달려나가는
네가 얄미워

심술을 부린다

돋아나는
생명
피어나는 꽃봉오리
어우러져 함께 나눌
다정함이 샘이나

나 너에게 투정을 한다

홀로 남아있을 외로움이 싫어
나 널 보내지 않으려고
안간힘 쓴다
(오보영·시인, 충북 옥천 출생)
+ 꽃샘추위

지독한 영하의 날씨가
덧난 상처를 애무하면
폭포는 몸부림치며
온몸을 하얗게 문신한다

힘들게 걷던 길 뒤로하고
물마루 타고 먼 길 돌아온
봄을 알리는 꽃샘추위
남몰래 너를 끌어안고 있어도
아직은 차가운 눈빛

따스한 체온 익을 때까지
힘찬 바람 날리며
그리움 품고 꽃잎 비상할 때
구름은 땅에 내려와 계절을 밀고 가고
물오른 매화는 봄의 열병을 앓는다
(노태웅·시인)
+ 꽃샘추위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
반쯤은 눈물로
반쯤은 한숨으로
두꺼운 고독을 벗는다

문밖 마당 한가운데
발가벗겨져
그저 멍하니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몸살 앓는 그리움은
젖은 숲에서
봄 햇살이 낯설어
가슴 시리다

때아닌 시샘
은빛 사시나무 위
눈치 없는 꽃망울은
몸서리치며 떨고 있다.
(공석진·시인)
+ 꽃샘추위

천만 근이나 넘는 지구가
내 머리통 위에 얹혀있구나
하체가 후들후들 뼈마디가 으스러진다.
고놈 꽃샘추위 칼 가는 소리에
콧구멍에 콧물이 시도 때도 없이 줄줄
이마는 뜨거운 열기로 빈 방 가득 달군다.

내가 그리 좋은지 비좁은 방구석엔
엊그제 밤부터 꽃샘들이
문틈 사이로 사랑 한번 하고 싶어
살짝살짝 엿보고 이젠 체통도 없이
바짓가랑이 가운데 멱살 잡으면 애무하고
꽃샘추위 숨소리 찢어지는구나.
(장수남·시인, 1943-)
+ 꽃샘추위 때문에

강물에 노닐던
철새는 오지 않고
은빛 백사장엔
봄 햇살만 내려놓아 눈부신데
겨우내 얼음장 밑에서
흐르던 고통의 강은
말없이 흘러간다.

매화의 고독을 내려놓을
녹색 나뭇잎은
돋아나지 않았는데
꽃망울 내밀어 보지만
아직은 그대 다가와도
핑크빛 미소지을 때가 아니다.
(장은수·시인, 충북 보은 출생)
+ 입춘 추위

평년보다 유별나게 행세했던 동장군
제 기념일인 대한도 모른 채 한눈 팔아
꼬리를 사리나 싶더니
그러면 그렇지 제 성깔 남 주랴

정상적으로 오르내리던 온도계 혈압이
봄의 문턱에서
지하로 급격히 추락해
온기 사라진 살벌한 세상

계절도 시기가 만만찮아
호락호락한 봄에게
그렇게 쉽사리
자리 비켜주기가 싫은 게야

다짜고짜 다가와 주물러대는
뻔뻔스런 봄의 끄나풀 아양 못 이겨
제풀에 지쳐 스러지는 그날까지
또, 얼마나 발악을 할는지
(권오범·시인)
+ 꽃샘추위

살아서 갚을 빚이 아직 많다
새벽 공기를 돌려야 할 집이 아직 많다
죽어서도 물음을 묻는 무덤이 아직 많다

우리 발에 올가미가 걸릴 때
우리 목을 억센 손이 내리누를 때
마주보는 적의 얼굴
가거라
한치도 탐하지 말라
몇 점 남은 우리 몸의 기름기
겨울의 마지막에 아낌없이 불을 당겨
겹겹이 쌓인 추위 녹일 기름
한치도 탐하지 말라

우리의 머슴이 되지 않으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가져가거라
마주잡는 손과 손을 갈라놓는 찬바람
꿈에까지 흉측한 이빨자국 찌고 가는 찬바람을
씨 뿌린 자가 열매 거둘 날이 가까왔다

번개가 번쩍이는 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안다
갚을 빚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안다
식중독으로 뜬눈으로 새우는 밤
우리는 하늘의 뜻을 버렸음을 깨닫는다
무덤 속에서 살아 있는 불꽃과 만난다

바람이 셀수록 허리는 곧아진다
뿌리는 언 땅속에서 남몰래 자란다

햇볕과 함께 그림자를 겨울과 함께 봄을
하늘은 주셨으니
(이종욱·시인, 1945-)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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