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2일 토요일
정진아의 ´라면의 힘´ 외
<음식에 관한 동시 모음> 정진아의 ´라면의 힘´ 외
+ 라면의 힘
꼬불꼬불 산길
즉석 라면 배낭에 담고
성큼
아빠 발자국 따라
종종종
올라간다.
차오른 숨
힘 빠진 다리
배 속에선 꼬르륵
˝아빠, 라면 먹고 싶어.˝
˝산꼭대기서 먹어야 더 맛있지.˝
올라간다
올라가
아빠 주먹만한 라면이
헉헉 지친 나를
산꼭대기로 끌어올린다.
(정진아·아동문학가, 1965-)
+ 상지리 분교 급식 시간
밥 위에 내려앉은 햇살
시금칫국에 퐁당 빠진 바람
함께 먹는다
˝휘어이 훠어이.˝
다랑논에서 새 쫓던 재덕이네 할아버지
경운기 몰고 돌아가는 소리 들으며
밥을 먹는다
경백이네 과수원
사과 익는 냄새는
입가심으로 먹는다.
(박혜선·아동문학가)
+ 메주의 꿈
알몸으로 매달려 있는 메주.
엄마가 음식으로 간 맞추듯
바람도 한소끔
햇빛도 한소끔
다녀가면
짭조름한 맛이 든다.
또르르 또르르
마당을 굴러다닌 콩이
몸을 합쳐 메주로 태어나
겨울을 나고 있다.
메주는
된장이 되어
보글보글 끓는
꿈을 꾼다.
(오순택·아동문학가)
+ 비빔밥, 이 맛
송송송 썬 김치를 넣어야지요.
콩나물도 한 젓가락,
생채도 담뿍 한 젓가락,
고추장도 빨갛게 한 스푼.
그러고 그냥 비빌 건가?
쨀끔, 고소한 참기름도 넣어야지요.
부벅부벅부벅-
숟가락을 틀어잡고 비비다가
어차, 먹어 보자 한 숟갈!
오오, 맛있네!
근데 이 맛은 어디서 올까?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서로서로 섞여서
만들어 내는 이 비빔밥 맛은.
(권영상·아동문학가)
+ 난 김치예요
씨앗으로 뿌려질 때부터
김치가 될 줄 알고 있었기에
넌출넌출 푸른 잎 키웠지요
그러나 김치가 되는 건 쉽지 않았지요
뿌리는 뽑히고
내 노란 속살에
굵은 소금이 뿌려져
나는 부들부들 숨을 죽여야 했어요
그것뿐인가요
살갗을 후비는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으로 비벼져
정신을 잃었지요
서로 다른 것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정말 몰랐어요
그렇지만 항아리 속에 꼭꼭 담겨진 우리는
조금씩 자기를 버리고
서로에게 익숙해졌지요
나에게는 양념 맛이 들고
양념에겐 내 향이 배고
그렇게 맛있는 김치가 되었어요
젓가락으로 김치 한 조각 들어올릴 때
기억해 줘요,
한때는 나도
흙에 뿌리내렸던 배추라는 걸.
(이혜영·아동문학가)
+ 시래기
할머니가 시장바닥에서
푸른 무청을 주워 온다.
며칠째 주워 온다.
- 할머니, 그런 쓰레기를
왜 자꾸 주워 모으는 거예요?
- 이건 쓰레기가 아니라
시래기란다.
겨울이 되면
맛있는 시래깃국이 될 거야.
할머니는
무청을 촘촘하게 끈으로 엮어
바람 잘 드는 곳에 매달아 놓는다.
무청이
사드락사드락 말라 간다.
우리 집 처마 끝으로
겨울이 온다.
(김응·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이상교의 깨진 별´ 외"> 정연복의 ´꽃들에게 배우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