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9일 토요일

굴절

굴절


물이 든 컵에 꼽힌 젓가락은

수면(水面)을 경계로 휘어져 보인다

서로 다른 매질(媒質)을 통과하면서

스스로를 낮추며 빛이 휘어들기 때문이다
느낌도 의지도 없는 무정(無情)세계도 이럴 진데

생판 모른 채 만났다 하여

정(情)으로 생겨난 당신 몸살

눈빛은 어이 휘지 않고 파고 들 수 있으랴

눈은 감게 할 수 있어도

잠들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태어나면서 본시 자유로웠고

틀 속에 갇히기를 그리 거부했던 나인데
변변한 전쟁 한 번 치르지 아니하고

당신에게 잡혀 포로 되었는데도

마음은 이리 포근해지고

사랑의 밧줄에 더욱 옥죄이기를 바라니
물방울 하나 빠져나가지 못하는 굴종 속에서

턱턱 숨차오르는 질식 속에서

사랑은 자유로워지고

그렇게 커져가는가

무슨 조화로 내 눈은

콩깍지 씌워져
장미꽃

난초

지초는

항시 갓피어나고
클레오파트라

양귀비

오드리햅번은

여느 때 없이 다가오는가

사랑은 또 왜 그리

시키지도 않은 거짓말

요리조리 돌려가며

눈도 깜빡 않는가
당신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슬픔을

기쁨씨 영글게 하려 고개 돌린다

그리 풀어 이야기하고
당신 떠나는 아픔 지켜보면서도

기쁨싹 틔워내며 돌아올 당신 기다린다

이리 둘러대는가
사랑의 밧줄은 단단히 묶일수록

환희울음은 커지지만

사랑의 밧줄에서 풀려나면

죽음보다 더 아픈 고통 따른다

대답하는가

둑 없는 강 어디 있으랴

되묻고 있는가

사랑은

묻어둔 사람만

알 수 있고 찾을 수 있는

가슴에 숨겨진 불씨런가

그리움만 닻 내릴 수 있는

바다에 떠도는

외로운 섬이런가
당신은 내게 이리 귀한

살 중의 살인데

또다른 나는 왜 그리 당신 못보고

또다른 당신에게만 다가가는가

당신이 떠나버린지

벌써 오래라

오늘도 나는

당신이 숨겨놓은

불씨를 찾아내려

내 가슴을 헤집고

닻 내릴 떠다니는 섬 찾아

당신 가슴 바다에

배를 띄우고 있다
그리고 떠나버린 당신에게

사랑의 밧줄로 더욱 옥죄어 달라

기도하며 노래하며

노예의 길을 더듬고 있다


(후기)

- 사람의 눈은 감게 할 수 있어도 …
You may force a man to shut his eye,
but you can not make him sleep.

(영국 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