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7일 목요일

느리게 느리게 아주 아주 느리게

내가 그대를 향하여 천 년 만 년
발 걸음 옮기며 걸어가다가 쉬어가다가
천천히 천천히 가서 닿는 것
내가 그대를 향하여 천 번 만 번
하루에도 몇 번씩 셀 수 없을 정도로
목숨 아깝지 않게 버리는 것
내가 그대를 향하여 천 길 만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혼절 기절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

광속으로 달려가는 숨가쁜 세상에서
그대와 눈짓 하나 마주치는 것도
먼 별에서 날아온 낯선 빛의 시간처럼
그대와 몸짓 하나 부딪히는 것도
먼 섬에서 불어온 낯선 바람의 거리처럼

느리게 느리게 아주 아주 느리게

내가 그대를 향하여 천 년 만 년
마당의 고목나무 뒷산의 기암괴석으로
꼼짝도 않고 서서 앉아서 그대를 바라보는 것
내가 그대를 향하여 천 번 만 번
여름철의 장마나 겨울철의 폭설로
눈에 보이는 것 다 덮어버리고 사라지는 것
내가 그대를 향하여 천 길 만 길
남극 북극의 얼음 빙하나 적도의 초원 사막으로
한 몸으로 달라붙어 있다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느리게 느리게 아주 아주 느리게

그대를 향하여 가다가
바다를 열고 물을 열고
마음을 열고 몸을 열고
우주를 열고 별을 열고
기다리던 그대가 죽고 찾아가던 내가 죽어
시간도 없고 거리도 없는
또 다른 세상에서 내가 그대를 만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