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5일 화요일

윤수천의 ´사막´ 외


<사막에 관한 시 모음> 윤수천의 ´사막´ 외
+ 사막

그곳에 가면 별을 볼 수 있다.
그곳에 가면 더 맑은 외로움을 만날 수 있다.
모래뿐인 땅
아득한 지평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올 수 있는 나라
모든 것을 다 잊고 올 수 있는 나라
그곳에 가면 맑은 영혼을 만날 수 있다.
별처럼 맑은 나를 만날 수 있다.
(윤수천·시인, 1942-)
+ 사막

시선이 미치는 거리만 가늠되는
무한의 모래 사막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래뿐인
모래의 중심에
발자국이 찍힌다 바람은 어딘가에
숨었다가 나타나
발자국과 그림자마저 지워버리고
흔적 없이 떠난다

말이 없다 소리를 질러도 그뿐
소리는 어디론가 증발해 버리고
무거운 적막이 내려온다
밤보다도 더 무거운 적막 아래
밤보다도 더 어두운 낮이 내려온다

보다가 보다가 눈이 지쳐
눈을 감는다 감아도 그뿐
사막만 보이고
존재하는 모든 색을 모래로 바꾸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모래로 덮어버려
하늘도 구름도 사막이다
그저 사막으로 존재한다
(유창섭·사진작가 시인, 1944-)
+ 사막에서 - death valley에서

불볕 속에
숨이 막혔습니다

모래바람 속에서
방향을 잃었습니다

필요한 것이
너무 많은 곳에서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생각나질 않네요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며
목이 마릅니다

사막을 끝까지 가면
물동이를 들고
당신이 계시리라는 확신

신기루일지라도
오직 희망만이
양식입니다

어쩌다 마주치는
사막의 풀처럼
흔적을 드물게 남기며
그러나
뜨겁게 살아야겠습니다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사막 7 - 신기루

머얼리 있어야 다가오는 것
머얼리 있어야 또렷해지는 것
머얼리 있어야 아름다운 것
가도가도 끝없는 열사의 지평에서
가슴에 뜨거운 태양을 안고 궁구하는 내
사랑.
(오세영·시인, 1942-)
+ 평생 사막을

평생 사막을 걸어본 적은 없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막을 걸어가는
모래 소리
그 소리가 날 지구보다 먼데 가 있게 하고
그 소리가 날 나보다 먼데서 오게 한다
(이생진·시인, 1929-)
+ 마음의 사막

별똥 하나가 성호를 긋고 지나간다
낙타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기도한 지는 이미 오래다
별똥은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저리도 황급히 사라지고
낙타는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평생을 무릎조차 펴지 못하는가
다시 별똥 하나가 성호를 긋고 지구 밖으로 떨어진다
위경련을 일으키며 멀리 녹두꽃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맡에 비수 한 자루 두고 잠이 드는 사막의 밤
초승달이 고개를 숙이고 시퍼렇게 칼을 갈고 앉아 있다
인생은 때때로 기도 속에 있지 않다
너의 영혼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하다
(정호승·시인, 1950-)
+ 사하라 사막은

모래 바람이 달려온다
공식도 없는 원통을 돌리며
무한소수로 파고든다.

산이 없어진다
길이 없어진다.

사막에선
평행선도 만난다.

낙타는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가슴도 버려야 한다.
(김희철·시인)
+ 바보사막

오늘 사막이라는 머나먼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니
출발하기에 앞서
사막은 가도 가도 사막이라는 것
해 별 낙타 이런 순서로 줄지어 가되
이 행렬이 조금의 흐트러짐이 있어도
또 자리가 뒤바뀌어도 안 된다는 것
아 그리고 그러고는 난생 처음 낙타를 타 본다는 것
허리엔 가죽수통을 찬다는 것
달무리 같은 크고 둥근 터번을 쓰고 간다는 것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에 이르러서
단검을 높이 쳐들어
낙타를 죽이고는
굳기름을 꺼내 먹는다는 것이다
오, 모래 위의 향연이여.
(신현정·시인, 1948-)
+ 사막의 언어

정작 언어가 필요 없더라도
하나쯤 기억해 두자
모래알은 갈증으로 서걱거리고
모두 알몸이다
오늘도 낙타는
제 몸을 허물며
사구(砂丘)를 넘고 있다

하늘이 제풀에 지쳐
주야로 같은 표정이다
정작 언어는 필요 없어도
하나쯤 기억해 두자
˝아직은 살아 있구나!˝

파충류의 발자국까지
고고학자가 발견한 유물과 같아
상형문자처럼 들여다본다
바람의 심술로 문자는 뭉개져도
뭉개진 자리엔 그들의 체온이 있을지니
하나의 언어쯤은 기억해 두자
살아 있는 건
모두 피붙이다

모래알과 모래알의
무서운 메시지
살과 살이 부딪치는 절정의 순간
하나의 언어를 기억하자
˝나는 아직 살아 있구나˝
(김용언·시인, 1944-)
+ 사막

사람이 사는
이 넓은 사막에서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홀로 외로운 낙타가 되어
모래알을 헤치며 걸어가는 것입니다

어딘가에는 있을 오아시스를 생각하며
어딘가에는 꼭 있을 사랑을 생각하며

사람이 사는
이 넓은 사막에서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
굽은 등줄기에
목마름을 견딜 수 있는 물기를 지고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눈물을 지고
스스로 고독한 낙타가 되어
사막 한가운데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강재현·시인, 강원도 화천 출생)
+ 사막·111

아무리 목말라 허둥대도
오아시스를 만나기 전엔
묘안이 없다.

언제였을까?
오아시스의 그늘 아래
반라로 드러누웠던 날이?

자오선을 지나는
따가운 햇살 쉴새없이
백사장에서 현기증을 일으키고

가물거리던 의식
낙타의 방울 소리에
곡예를 부리며 깨어났던

아스라한
그날이
진정 언제였던가?
(손정모·교사 시인, 1955-)
+ 사막의 기도 - 광야 시편 12

인간이 탈진한 곳에서
사막도 탈진한다
사막이 탈진한 곳에서
신도 탈진한 듯

적막만이 넘실대는 곳을
오체투지로 걷는다
생각 끊기고
시간도 끊길 때쯤
어둠보다 짙은 고요가 찾아온다
별똥별 저쪽으로 스러지는
눈부신 순간
내 기도도 은하를 건넌다
순결을 잃고 품위를 잃고
블랙홀 근처에서 떠도는
이 무거운 지구의 한 켠
내 기도가 은하를 건넌다

오, 나지막한 계시의 바깥에서
내 너무나 오욕을 사랑했음을
아니 방황과 더불어 살았음을.....
(박재화·시인, 1951-)
+ 사막 調

그대는 아세요
우리 나라에 사막이 있다는 것을

풀이나 꽃 새 따위가 없는
사막이 있어
우리 생애의 반이었다는 것을

물 한 방울 얼씬못하는
적막 아래
밑뿌리가 들린 나무들이
있는 대로 거부하는 몸짓으로
하늘을 휘젓고

우는 거라곤 병신새들뿐인
사막에서
우리는 모두 벙어리새가 되어
언제나 암호로만 울고 사는 걸
그대는 아세요
(문정희·시인, 1947-)
+ 어느 오후 그 사막

너무도 뜨거운
한낮.

텅 빈 길에
선인장처럼
가시로 선
행인 두엇.

무료한 시간들이
하얗게 뼈를 드러낸 채
길 위로 눕는다.

저벅저벅
그 사이를 걸어오는
졸음 몇 개만 도둑처럼
갑자기 활기를 띤다.
(김영천·시인, 1948-)
+ 사막에서

광활한 사막
가파르게 떨어져 나간
모래성에
삭막하게 죽어 간 영혼들이
모래언덕 쌓았다 허물고
황소바람 기세가 당당하다

사막을 흔들어
내 발목을 잡고
무덤을 만들어 가는데
걸어온 길 뒤돌아보면
흔적도 없고
삶의 무게 견디지 못하는
고행의 사막길

오아시스!
가냘프게 뿌리내린 모진 생명 하나
난초 한 송이 해맑게 미소짓네
(장은수·시인, 충복 보은 출생)
+ 사막

사막은 어디에도 있다
황당한 회오리바람
혹독한 염천炎天
우리 곁에 있다

눈감고 귀막고
가슴까지 닫게 하는 작금昨今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이
끈끈이주걱으로
버젓이 번식하고 있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 모래알 속의 사막

알알이 존재하는 사막을
해체하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가느다란 바람에도 걸음을 옮기는
그 익숙한, 노동이
그것들을 변덕스레 만들었으리라

깊은 겨울잠을 자는 대지를
감싸안고 달구어지는
모래들의 고행을
버티지 못해 이탈해 나온
한 무리의 모래바람이
눈감은 도시, 새벽의 그늘 속으로
기어든다

결코 무겁지 않은 나의 입김이
모래알 속의 사막, 알알이 존재하는
도시를 해체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거늘
(김준철·시인, 1969-)
+ 우리는 사막을 건너간다

일렬로 앉아 집으로 간다 땅굴을 지나 다리를 건너 붉은 십자가 밑을 지나간다 십자가가 비석처럼 늘어선 도시, 거대한 묘지를 떼 지어 지나간다 종일 도시의 사막을 떠돌던 무리들 신문을 덮고 귀마저 닫고 목하 기도 중 손잡이에 매달려 있던 전갈을 닮은 사내는 어느 사막에서 내렸는지... 지팡이 하나로 더듬더듬 세상을 헤매는 저 맹인, 캄캄한 사막에서 수없이 모세의 지팡이를 생각했으리 뒤따라 온 아이는 때 절은 쪽지와 껌 한 통을 무릎마다 놓고 간다

우린 지금 눈을 감고 회개 중, 전철이라는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가며
(마경덕·시인, 1954-)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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