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일 월요일

유지은의 ´나뭇잎 한 장에는´ 외


<길에 관한 동시 모음> 유지은의 ´나뭇잎 한 장에는´ 외

+ 나뭇잎 한 장에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뭇잎 한 장에도
길이 있네.

꽃이 피기까지
어두운 땅속에서
뿌리가 걷어올린 물을
나르던 길.

환한 햇살
지나간 길이
잎에 새겨져 있네.

비바람에
얼굴 파래지도록
나뭇가지에 매달렸다가
밤이면 별빛 모아 받아 둔
이슬 한 방울



내려오던 길.

제 몸 아픈 줄도 모르고
푸른 잎 두 손처럼 모아 감싸준
애벌레 지나간 길도 보이네.

따뜻한 마음의 길이 보이네.
(유지은·아동문학가)
+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시인, 1917-1945)
+ 산골길

외줄기 산골길은 꼬불꼬불 길.
비가 오면 샘이 흘러 은실 같은 길.
외줄기 산골길은 끝이 없는 길.
눈이 오면 산토끼가 먼저 걷는 길.
(한인현·아동문학가)
+ 길

길은 뱀처럼 길다
가면 갈수록 길다
머리도 없이 길다
꼬리도 없이 길다
알겠니 뱀아
길은 길어
너보다 훨씬 길어
(최승호·시인, 1954-)
+ 새로 난 길

할머니 무덤 아래로
새로 난 오솔길 하나

저승 가신 할머니
옷고름 한 짝 흘리셨네.

언제든 찾아오라고
귀띔 삼아 흘리셨네.
(박방희·아동문학가, 1946-)
+ 들길

누가 맨 처음
길을 내며 걸어갔을까?
풀꽃을 보면
풀꽃 앞에 앉았다 가고,
나비를 보면
나비를 쫓아가고,
제멋대로 꼬불꼬불 꼬부라진 길.

나 혼자 걸으면
처음 이 길을 내고 간
정다운 얼굴처럼
풀꽃 앞에 앉아
귀기울여 듣고프다.
누군가 두고 간 정다운 이야기를
몰래 꺼내 보고프다.
(민현숙·아동문학가, 1958-)
+ 길

길은
포도 덩굴

몇백 년이나 자라
땅덩이를 다 덮었다.

이 덩굴
가지마다

포도송이 같은
마을이 있고

포도알 같은
집들이 달렸다.

포도알이 늘 때마다
포도송이는 커 가고

갈봄 없이
자라 가는
이 덩굴을 통하여

사람과 사람이 도와 가고
마을과 마을은 이어져서

세계는
한 덩이 과일로
토실토실 익어 가고 있는 것이다.
(김종상·아동문학가, 1937-)
+ 길은 그렇게

두엄내 풍겨오는 들판을 지나
놀빛 고운 산마루를 기어 넘고
울멍줄멍 구름골짜기를 감돌아
길은 저 혼자서 가고 있었다.

물비린내 풍기는 갯벌을 따라
끝없이 설레는 물이랑을 누벼서
마파람 몰아오는 수평선 너머로
길은 쉬지 않고 가고 있었다.

애달픔처럼 먼 바다를 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나는
길을 따라, 길과 더불어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항상 함께 다니는 나의 길.
(김종상·아동문학가, 1937-)
+ 다니지 못하는 길

수강료
몇 달치 못 내고
흐지부지 그만 둔 학원

길 가다
그 학원 차만 봐도
죄 지은 듯 깜짝 놀라고,
심부름 갈 때도
학원 길로는
다니지 못한다.

˝혜원이, 잘 풀었네.˝
뒷머리 쓰다듬어 주시던
손길도 떠오르고,
˝혜원아, 조금만 기다려 봐.˝
하시는 엄마의 말씀도
무슨 뜻인지 안다.

수강료
못 낸 소문이
동네에 돌아도 어쩔 수 없지만,
계절이 바뀌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아빠 소식은 누가 물어다 줄까?

동네에 맘놓고
다니지 못하는 길이
생긴 뒤부터
내 맘에는 날마다
살얼음이 버석거린다.
(양재홍·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상투적 신앙´ 외 12편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