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3일 화요일

석류에게

석류에게

김종제
피란도 가지 못하고
견디기 어려운 물의 시절과
불의 시대를 참아내었으니
그 속이 붉게 타들어갈 수밖에
저 담벼락 아래 오래된 유배 같은
섬에 홀로 남아있었더니
오늘 그 하나의 무게로
세상이 휘청 쓰러질 듯 석류여,
하여 당신을 주인으로 섬기겠다
나를 종으로 삼아
평생토록 발치 아래 둔다면
감히 반역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사랑을 지니겠다
내 무릎을 밟고, 등을 밟고
어깨 위에 올라섰으니
흔들리는 몇 개의 잎사귀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를
햐, 저 둥근 몸매도 무르익어서
마음의 알갱이들이 한껏 부풀었으니
둑을 차고 넘치는 것이다
사랑이 터질대로 터져버려서
살갗을 뚫고 나와
불꽃 같은 생을 살기를
하여 불면으로 잠 못 들고
문 밖에 서성거리고 있는 석류여,
하루에도 수차례
당신의 손과 발을 씻겨 드렸으면
땅바닥에 몸째 던져놓았으니
무덤이라 여겨 새로 돋아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