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4일 토요일
장석주의 ´새´ 외
<새 시 모음> 장석주의 ´새´ 외
+ 새
새, 어떤 규율도 따르지 않는 무리.
새, 허공의 英材들.
새, 깃털 붙인 질항아리.
새, 작고 가벼운 혈액보관함.
새, 고양이와 바람 사이의 사생아.
새, 공중을 오가는 작은 범선.
새, 지구의 중력장을 망가뜨린 난봉꾼.
새, 떠돌이 풍각쟁이.
새, 살찐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가벼운 육체.
새, 뼛속까지 비운 유목민들.
새, 똥오줌 아무데나 싸갈기는 후레자식.
새, 국민건강의료보험 미불입자.
(장석주·시인, 1954-)
+ 새장 속의 새
새장 속의 새는
새장 밖으로 고개를 쑤욱 내밀어
하늘을 쪼아다
새장 안에 쌓는다
하늘이 쌓이면
훨훨 날아가려고
(고미숙·시인, 전남 곡성 출생)
+ 새알
들길을 가는데
길옆 풀숲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깃을 치며 푸드덕 달아났다
나는 깜짝 놀랐다
새가 달아난 자리에 가보니
풀잎을 촘촘히 엮어 만든 둥지 안에
두 개의 새알이 있었다
아, 포르스름한 그것은 내가 세상에서
맨 처음 보는
가장 애틋하고
눈물겨운 빛깔이었다
(이동순·시인, 1950-)
+ 새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부지런한 새들
가끔은 편지 대신
이슬 묻은 깃털 한 개
나의 창가에 두고 가는 새들
단순함, 투명함, 간결함으로
나의 삶을 떠받쳐 준
고마운 새들
새는 늘 떠날 준비를 하고
나는 늘 남아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새
이른 새벽 약수터 가는 길
직박구리들이
끼익 끼이익
자꾸만 시계태엽을 감는다
시간을 더 감아서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
개울물은 떨어진 꽃잎을 품고
휘파람 불며 흘러가는데
(나병춘·숲 해설가 시인, 1956-)
+ 솔개
낡은 부리가 빠질 때까지
부리로 바위를 쪼개고 있는
솔개를 보았다
솔개는 새로 돋은 부리로
늙은 발톱과 두꺼워진 깃털을 뽑아내고
새 발톱과 깃털을 세운다
생은 때로
제 살을 도려내야
다시 서는 것
아슬한 절벽을 지나
솔개가 산을 덮으며
산맥을 넘는다
(곽문연·시인, 충북 영동 출생)
+ 딱새와 싸리나무
딱새 한 마리
싸리나무 가지 끝에
날아가 앉는다.
싸리나무가
휘청,
딱새는
흔들,
딱새야,
싸리나무 가지 잘 잡아라.
싸리나무야, 조심해라.
딱새야 멀미날라.
(안도현·시인, 1961-)
+ 소쩍새
밤이 되면 소쩍새는
울음으로 길을 놓는다
어둠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소리의 길
어린 새끼들 그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행여 길 끊어질까봐
어미 소쩍새는
쑥독쑥독 징검돌
연이어 놓는다
골 깊은 봄밤
새끼 걱정에 쑥떡 얹힌 듯
목이 메어
목이 쉬어
(이대흠·시인, 1968-)
+ 새와 나무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 없이
살아가는 뭇 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류시화·시인, 1958-)
+ 새
잠든 잎새들을 가만히 흔들어봅니다
처음 당신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날처럼 깨어난 잎새들은 다시 잠들고
싶어합니다 나도 잎새들을 따라 잠들고
싶습니다 잎새들의 잠 속에서 지친
당신의 날개를 가려주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뜨면 깃을 치며 날아가는
당신의 모습이 보이겠지요 처음 당신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날처럼 잎새들은
몹시 떨리겠지요
(이성복·시인, 1952-)
+ 새
한 마리의 새가
공중을 날기 위해서는
바람 속에 부대끼며 뿌려야할
수많은 열량들이 그 가슴에
늘 충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보라,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은
노래로써 그들의 평화를 구가하지만
그 조그만 몸의 내부의 장기(臟器)들은
모터처럼 계속 움직이면서
순간의 비상 이륙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오, 하얀 달걀처럼 따스한 네 몸이 품어야 하는
깃털 속의 슬픈 두근거림이여
(이수익·시인, 1942-)
+ 지상의 양식
너희들의 비상은
추락을 위해 있는 것이다.
새여,
알에서 깨어나
막, 은빛 날개를 퍼덕일 때
너희는 하늘만이 진실이라 믿지만
하늘만이 자유라고 믿지만
자유가 얼마나 큰 절망인가는
비상을 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진흙 밭에 뒹구는
낱알 몇 톨.
너희가 꿈꾸는 양식은
이 지상에만 있을 뿐이다.
새여.
모순의 새여
(오세영·시인, 1942-)
+ 어미 새
호로롱
집 앞 목련나무 가지에 방울새가 날아와 앉았다
부리에 벌레를 가로물었다
이쪽저쪽 둘레거리다 내 쪽을 본다
나는 부러 딴 데를 본다
가까운 곳에서 새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호로롱
(이안·시인, 1967-)
+ 어미 새, 아기 새
또부르르 또부르르 짹
어미 새가 가르치면
떠블 떠블 찍
따라하는 아기 새
아카시꽃 필 때부터
찔레꽃 질 때까지 가르쳤는데도
아직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는
아기 새를
오늘도 또 가르치려고
곁에 와 부리를 세우는
어미 새가 예쁘다
갈참나무 잎 연녹색일 때부터
푸르른 그늘에 몸이
가릴 때까지 배웠어도
그 소리밖에 못 하지만
이만큼 했으면 됐지 뭐 하면서
상수리나무 가지 사이를
포롱포롱 건너다니는
아기 새도 예쁘다
또부르르 또부르르 짹
떠블 떠블 찍
(도종환·시인, 1954-)
+ 사랑이 자라는 뜰
아직도
내 체온이 식지 않은
풀씨를 한 움큼
창 앞에 뿌려 놓고
새를 기다린다.
늙은 참새 한 쌍이
날아와
마음놓고
내 체온을 다 주워 먹었다.
따사한 정에
허기를 면하고
몸이 풀려 서늘한 표정으로
목례를 하고
얼마간 졸다가
구름밭을 지나
어디론지
날아가 버렸다.
지금 창 앞에는
새가 두고 간 사랑이
풀잎으로
자라가고 있다.
(황금찬·시인, 1918-)
+ 작은 것을 위하여
굴뚝새들은 조그맣게 산다.
강아지풀 속이나 탱자나무 숲속에 살면서도 그들은 즐겁고
물여뀌 잎새 위에서도 그들은 깃을 묻고 잠들 줄 안다.
작은 빗방울 일부러 피하지 않고
숯더미 같은 것도 부리로 쪼으며 발톱으로 어루만진다.
인가에서 울려오는 차임벨 소리에 놀란 눈을 뜨고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에 가슴은 떨리지만
밤과 느릅나무 잎새와 어둠 속의 별빛을 바라보며
그들은 화해와 순응의 하룻밤을 새우고
짧은 꿈속에 저들 생애의 몇 토막 이야기를 묻는다.
아카시아 꽃을 떨어뜨리고 불어 온 바람이 깃털 속에 박히고
박하 꽃 피운 바람이 부리 끝에 와 머무는 밤에도
그들의 하루는 어둠 속에서 깨어나 또다른 날빛을 맞으며
가을로 간다.
여름이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들녘 끝에 개비름꽃 한 점 피웠다 지우듯이
가을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산기슭 싸리나무 끝에
굴뚝새들의 단음의 노래를 리본처럼 달아둔다.
인간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하는 동안에도
인간 다음에 이 지상에 남을 것들을 위하여
굴뚝새들은 오리나무 뿌리 뻗는 황토 기슭에
그들의 꿈과 노래를 보석처럼 묻어 둔다.
(이기철·시인, 1943-)
+ 새였으면 좋겠어
새였으면 좋겠어. 지금의 내가 아니라
전생의 내가 아니라, 길짐승이 아니라
옥빛 하늘 아득히 날개를 퍼덕이는,
마음 가는 데로 날아오르고 내리는
새였으면 좋겠어. 때가 되면 잎을 내밀고
꽃을 터뜨리지만, 제자리에만 서 있는
나무가 아니라, 풀이 아니라, 걸을 수는 있지만
날지 못하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몸에도
마음에도 퍼덕이는 날개를 달고 있는
새였으면 좋겠어. 그런 한 마리 새가 되어
이쪽도 없고 저쪽도 없는, 동도 서도 없이
저쪽이 이쪽이 되고, 북쪽이 남쪽이 되는
그런 세상을 한없이 드나들고 오르내리는
나는 하염없이 꿈꾸는 풀, 아니면 나무
아니면, 길짐승이나 전생의 나, 아니면
지금의 나도 아니라, 새였으면 좋겠어.
언제까지나 아득한 허공에 날개를 퍼덕이는,
(이태수·시인, 1947-)
+ 홀딱새
숲해설가와 함께 방태산 미산계곡에 들었다
낱낱의 사연과 생애가 사람살이와 다를 바 없어
신기하기도 뭉클하기도 하다 하지만 발을 떼는 족족
소소한 것들까지 시시콜콜 설명하려드는 통에
골짜기 깊어질수록 감동이 반감되고 만다 게다가
비조불통 기막힌 풍광 앞에서는 소음과 진배없다
상호간 불편한 기색 감추기에 급급할 즈음
새 한 마리 물푸레나무 허공을 뒤흔들어댄다
검은등뻐꾸기라며 강의를 재개하려하자
누군가 볼멘소리로 막아선다
딴 건 몰러두 갸는 지가 좀 알어유 홀딱새여유
소싯적부텀 그렇게 불렀슈 찬찬히 함 들어봐유
홀딱벗꼬 홀딱벗꼬... 어뗘유 내 말이 맞쥬?
다소 남세스럽지만 영락없다
육담이려니 흘려들었는데 아니다
기막힌 화두다
생의 겹겹 누더기 훌훌 벗어던지고
가뿐해지라는
(손세실리아·시인, 1963-)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이규홍의 ´아버지의 임기´ 외 "> 강은교의 ´빗방울 하나가´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