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8일 수요일

아내 그리고 여자

현실에서 달아나고 싶은 날
아내의 고무장갑은 푸른색이거나 초록색이었다.
그럴 때 나는
아내가 머리모양을 달리 하거나 유난히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을 때처럼 불안하다.
쏴쏴쏴
수돗물소리 거칠고 발자국 소리 쿵쾅거릴 때
술잔 기울다 분위기에 휩쓸려 오입질하고 오던날
현관문을 여는 아내의 낡은 스웨터처럼 안쓰럽다.
구멍난 양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신고 tv 리모컨을
돌리는 아내에게서 나는 쉰 김치냄새에서 약수터를
오르며 스친 비구니의 웃음이 스친다.
메마른 가시 같은 여자
볼품없이 드러난 가슴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여자
그러나
품안에 안으면 군불 덥혀진 아랫목 같이 따뜻하고 아늑해서
금방이라도 평온한 잠속을 빠져들게 하는 여자
아내의 젖가슴이 비릿해질 무렵
잦아든 수돗물 소리 들린다.
실로 옭아맨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쌕쌕 숨소리 어깨 들먹이도록 집어 삼키는
주방 빨래 집게에 파란 고무장갑 초록 고무장갑이
들숨 날숨으로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