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6일 화요일

님은 어찌 나를 슬프게 하십니까 - 김정한

님은 어찌 나를 슬프게 하십니까 - 김정한

님은 어찌 나를 슬프게 하십니까
님은 어찌 내 얼굴로 나타나 나를 힘들게 하십니까

나, 태어나기 전에 내가 없었던 것처럼
님을 만나기 전에 나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님을 만났기에
님을 사랑하기에
나라는 존재가 태어난 것입니다

말없이 다가와서 말없이 떠나는 시간처럼...
님은 언제나 말없이 나타나 나를 울리시고

말없이 사라지십니까

당신과 나 언제인가는
하나가 아닌 둘이 되어 떠나가겠지요

그 때가 올까봐 두렵습니다
그 때가 올까봐 무섭습니다

이 아침 제 머리위로 비가 내립니다
아프게 비가 내립니다
떠나신 님의 눈물처럼 아프게 내립니다

님은 어찌 나를 슬프게 하십니까
님은 어찌 내 얼굴로 나타나 나를 힘들게 하십니까

님이 남이 아닌 님으로
내 곁에 있을 수 만 있다면
님이 나를 사랑할 수 만 있다면
그럴 수 만 있다면
나는 당신 앞에 무릎꿇고
흐득흐득 울며 기뻐할 것입니다

하지만 님은 내가 아니기에
님은 나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말 못하는 인형이 되어 버렸습니다

님은 어찌 나를 슬프게 하십니까
님은 어찌 내 얼굴로 나타나 나를 힘들게 하십니까

김정한시집 - 너를 사랑하다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