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꽃 진 거 봤는데
며칠 찰라에
배롱나무에 다시 꽃 피었다
대적광전 올라가는 길이다
나무로 비석을 세웠으니
새겨진 분홍의 꽃을 읽는다
일주문 절을 열고
대장경을 찾아 읽는다
꽃 하나마다
생의 경전이 새겨있어
팔만의 상형문자를 읽는다
배롱나무 저 꽃이
평생 읽어야 할 경이다
꽃 진 적 결코 없었는데
내가 여태 꽃대만 보고 있었다
글 읽으려 한 발 더 내밀어
나무에 바짝 다가서지 못하고
먼 발치에서
구경꾼 같은 비석만 보고 있었다
나도 물에 오래 담구었다가
때때로 꺼내 볼
꽃 같은 경 새겨넣겠다
누구도 함부로 해석할 수 없는
해인 같은 글이라서
내 몸에 꽃 피겠다
나무 비석 같은 내게서
경전 같은 꽃 피는 걸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