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5일 일요일

일월도 그리는 남자

산봉우리 다섯 사이로
해 붉고 달 푸르다 나머지는
수묵水墨의 여백 속에 감췄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으므로
쉬지 않고 손 부딪히며 떠올라
발길을 밝히라는 분부다
머리 묶은 이순의 그 남자
옷을 벗어 세상에 펼쳐 놓았으니
칠흑의 먹을 갈아
붓으로 일월도를 그린다
천강千江과 만천萬川 흡족하게 이룰
폭포도 없고
우거진 수풀 위로
한 줄기 뿌려줄 물보라도 없으며
땅의 천장과 하늘의 뿌리를
움켜쥐고 있어야 할
붉은 소나무도 없지만
저 허공 위로
물 흘러가는 소리 쇠 부딪히는 소리
불길이 일어나고 나무가 타오르고
흙이 산더미처럼 묻혀있다
동서남북 가운데
병풍 앞의 왕처럼 그가 서 있다
해 뜨고 달 뜨기 전에
논밭에 나가 육신 분분히 나눠주는
아버지 같기만 하라고
해 지고 달 지기 전에
부엌에 나가 마음 절절히 찢어주는
어머니 같기만 하라고
일월오붕도 속에
그의 몸 가르고 난 피로 낙관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