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3일 월요일

소요산, 잔설殘雪 혹은 잔빙殘氷

내 그럴 줄 알았다
꿋꿋하게 버텨낼 줄 알았다
봄이 무섭다고
한 걸음이라도 물러설 줄 알았더냐
그러니까 원효가 제몸에 쌓였던
눈이라든가 얼음이라든가
그것도 만행의 하나라고
포옹하며 끌어안고 있었다
햇살 같은 미소로 쳐들어오는
관음도 막아냈다
나한의 설총은 아직 눈길을 헤매고
얼음으로 화한 요석공주는
바위에 기대어 눈물 흘리고 있었지만
원효는 아직 겨울이라고 주장했다
아직 남아있는 눈과 얼음과
쉽사리 사라질 수 없는
그의 묵언이었다
칼바위 밟고 가는 그늘이 깊다
머리 내려치는 한 말씀처럼 서늘하다
파계라고 믿었던 사내가
몸을 뚝 분질러 불을 질렀는지
백운대 저 허공의 길에
눈발이 날린다, 계곡에 마음이 쌓였다
소요산이 적멸에 들었는지 고요하다
이승으로 가는 발길 조심하라고
저 밑의 입구까지
군데군데 얼음을 남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