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7일 토요일

이선관 시인의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외


<몸에 관한 시 모음>

이선관 시인의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외
+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가령
손녀가 할아버지 등을 긁어 준다든지
갓난애가 어머니의 젖꼭지를 빤다든지
할머니가 손자 엉덩이를 툭툭 친다든지
지어미가 지아비의 발을 씻어 준다든지
사랑하는 연인끼리 입맞춤을 한다든지
이쪽 사람과 윗쪽 사람이
악수를 오래도록 한다든지
아니
영원히 언제까지나 한다든지, 어찌됐든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참 참 좋은 일이다.
(이선관·시인, 1942-2005)

+ 몸

아침저녁 맑은 물로
깨끗하게 닦아주고
매만져 준다
당분간은 내가 신세지며
살아야 할 사글세방
밤이면 침대에 반듯이 눕혀
재워도 주고
낮이면 그럴 듯한 옷으로
치장해 주기도 하고
더러는 병원이나 술집에도
데리고 다닌다
처음에는 내 집인 줄 알았지
살다보니 그만 전셋집으로 바뀌더니
전세 돈이 자꾸만 오르는 거야
견디다 못해 전세 돈 빼어
이제는 사글세로 사는 신세가 되었지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방세는 점점 오르고
그러나 어쩌겠나
당분간은 내가 신세져야 할
나의 집
아침저녁 맑은 물로 깨끗하게
씻어 주고 닦아준다
(나태주·시인, 1945-)

+ 오체투지

몸을 풀어서
누에는 아름다운 비단을 짓고

몸을 풀어서
거미는 하늘 벼랑에 그물을 친다.

몸을 풀어서,
몸을 풀어서,
나는 세상에 무얼 남기나.

오늘도 나를 자빠뜨리고 달아난 해는
서해바다 물결치는 수평선 끝에
넋 놓고 붉은 피로 지고 있는데.
(이수익·시인, 1942-)

+ 등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고자
자리에 누우려고 할 때
등이 먼저 알고
방바닥에 눕는다.

등은 갑갑한 방바닥 틈 사이에서
숨조차 쉴 수 없어도

느낌표를 채우느라
하루동안 수고한 가슴을 위해
기꺼이
등받이가 된다.
(윤삼현·시인이며 아동문학가, 1953-)

+ 천사의 가슴

곱사등이 한 여자가
세찬 눈보라를 봉긋한 등으로 밀며
뒷걸음질로 걸어간다

마치, 아이를 잃어
퉁퉁 불은 젖으로 칼바람에게
베어물리듯이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육체의 유일한 聖地,
인간의 등이
다름 아닌 천사의 가슴이었다고
따뜻한 젖이 돈다고

길을 잃은
차디찬 조막손이 눈송이들이
그녀의 솟은 등섶을 파고든다
(이덕규·시인, 1961-)

+ 내 몸에 짐승들이

늑골에 숨어살던 승냥이
목젖에 붙어있던 뻐꾸기
뼛속에 구멍을 파던 딱따구리
꾸불꾸불한 내장에 웅크리고 있던 하이에나

어느 날 온몸 구석구석에 살고 있던 짐승들이
일제히 나와서 울부짖을 때가 있다
우우 깊은 산
우우우 울고 있는 저 깊은 산

그 마음산에 누가 절 한 채 지어주었으면
(권대웅·시인)

+ 서시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이정록·시인)

+ 인간은 인간에게 때밀이 -대중탕에서·6

지옥에 가니 지옥 사람들
진수성찬을 앞에 놓고
자기 키만한 젓가락을 가지고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지 못해
젓가락처럼 야위어 있었다고 한다
천국 사람들은 긴 젓가락에
음식을 집어 서로의 입에 먹여주며
잘 살고 있었다고 한다

내 몸이라 하지만
내 손이 닿지 않는 구석이 있다
그 곳에 감춘 것이
눈물과 땀과 한숨뿐일지라도
그대여 그대 외로운 등을
나에게 보여다오
내 외로운 등 그대에게 내어주고
(복효근·시인, 1962-)

+ 몸은 지상에 묶여도

한밤 짐승이 되어 울까
눈물 가득 꽃이 되어 울까
광야에 웅크려 하늘을 본다
몸은 지상에 묶여도
마음은 하늘에 살아야지
이 가지 저 가지를 헤매며
바람으로 울어도
영혼은 저 하늘에 별로 피어야지
절망으로 울던 마음 그 가난도
찬연한 아픔으로 천상에 빛나야지
광야에 웅크려 다시 하늘을 본다
마음 잎새에 빛나는 별빛이어
눈물 가득 꽃이 되어 울까
한 마리 짐승이 되어 울까
(이성선·시인, 1941-2001)

+ 몸의 신비, 혹은 사랑

벌어진 손의 상처를
몸이 스스로 꿰매고 있다.
의식이 환히 깨어 있든
잠들어 있든
헛것에 싸여 꿈꾸고 있든 아랑곳없이
보름이 넘도록 꿰매고 있다.
몸은 손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몸은 손이 달려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다.

구걸하던 손, 훔치던 손,
뾰족하게 손가락들이 자라면서
빼앗던 손, 그렇지만
빼앗기면 증오로 뭉쳐지던 주먹,
꼬부라지도록 손톱을
길게 기르며
음모와 놀던 손, 매음의 악수,
천년 묵어 썩은 괴상한 우상들 앞에
복을 빌던 손,
그 더러운 손이 달려 있는 것이
몸은 부끄럽지 않은 모양이다.

벌어진 손의 상처를
몸이 자연스럽게 꿰매고 있다.
금실도 금바늘도 안 보이지만
상처를 밤낮없이 튼튼하게 꿰매고 있는
이 몸의 신비,
혹은 사랑.
(최승호·시인, 1954-)

+ 몸만 가지고 말한다면야

몸만 가지고 말한다면야
성인(聖人) 아닌 사람이 어디 있으랴?
맨손으로 왔다가
맨손으로 갈 때까지
핏줄이 제 길을 벗어난 적 있으며
허파가 제 일을 마다한 적 있느냐?
몸만 가지고 말한다면야
공자(孔子)와 도척(盜拓)이 다르겠느냐?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갈 때까지
하늘님 계시는 유일한 곳
지금 여기를 떠난 적이 있느냐?
자기 몸처럼만 살았다면야
성인(聖人) 아닌 사람이 어디 있으랴?
(이현주·목사)

+ 너 몸이 있는 자

너 귀가 있는 자, 주의 말씀 들어라.
그 놀라운 뜻 네 가슴 뛰게 하리라.

너 눈이 있는 자, 주의 행함 보아라.
그 놀라우신 일 네 앞길 밝혀 주리라.

너 손이 있는 자, 주의 사랑 닮아라.
그 부드러운 손 세상 치유하리라.

너 입이 있는 자, 주의 말씀 씹어라.
그 향기로움이 네 입에 가득하리라.

너 코가 있는 자, 삶의 참 맛 맡아라.
네 어둔 얼굴에 미소 가득하리라.

맹물로써 포도주를 만드신 놀라운 솜씨
이 몸을 바꾸사 기쁨 누리게 하신다.
(프래드 카인)

+ 몸이 많이 아픈 밤

하늘에 신세 많이 지고 살았습니다
푸른 바다는 상한 눈동자 쾌히 담가주었습니다
산이 늘 정신을 기대어주었습니다
태양은 낙타가 되어 몸을 옮겨주었습니다
흙은 갖은 음식을 차려주었습니다
바람은 귀속 산에 나무를 심어주었습니다
달은 늘 가슴에 어미 피를 순화시켜주었습니다
(함민복·시인, 1962-)

+ 몸살

딱히 찾아올 사람도 없어
이따금 외로움이 밀물지는 때

불현듯 불청객처럼
다가오는 너

끈질기게 들러붙어
몸이야 많이 괴롭더라도

너와의 꿈결 같은
몇 날의 동거(同居) 중에는

파란 가을 하늘처럼
맑아지는 정신

왜 살아가느냐고
무엇을 사랑하느냐고

너는 말없이
화두(話頭) 하나 던지고 가지
(정연복)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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