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일 월요일

천 년 동안

소낙비 내리던 날부터
지렁이처럼 배를
땅바닥에 질질 끌며
천 년 동안을 하루같이 기어왔다
허물의 살갗이 벗겨지고
갑옷 속 내장이 다 튀어나왔다
가시 많은 뼈마저 드러났다
햇살 받아
마음속이 하얗게 타들어갔다
비록 숨을 빼앗기더라도
느리게 느리게 걸어가면서
한없이 가 닿고 싶었다
등 뒤에 꼭 달라붙어
딱딱하게 그대로 굳어버리고 싶었다
한 몸으로 화석이 되고 싶었다
천 년 동안에 내가
다리도 팔도 없이
몸을 수레처럼 밀고 가고 있다
내 앞은 늘 가파른 비탈길이고
나는 천만근보다 더 무겁다
당신은 깃털처럼 가볍다
나비처럼 훨훨 허공으로 날아간다
당신에게 가 닿기 위해
외딴 세상을 기어간다
내가 가야할 길이 천 년이다
그곳까지 가 닿으면
당신은 또 훨훨 새처럼 날아간다
지렁이 같다
손발 없이 당신 찾아가는 내가
지렁이, 아, 지렁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