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9일 일요일

억새의 환유

쉬이 부러지지 아니하고
가볍게 끊어지지 아니하고
대(代)를 이어
억세게 살아온 민초다
누구는 민둥산 억새를
50년대 해방군 인민들에게
벌건 대낮, 광장에서
대나무 창살로 찔려
애…J게 목숨 잃은 반동들이
흘린 흰 핏자국이라고 하고
누구는 화왕산 억새를
80년대 간첩 잡는 사복들에게
칠흑 한밤, 밀실에서
주먹에 맞고 고문을 당해
가엾게 요절한 학생들이
흘린 눈물 소금이라고 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가을 저것들이 있어서
내몸에
비바람이나 눈보라 안 들어차게
지붕을 이었으니
농사도 짓고 허기도 면하게
마소를 먹였으니
오늘은 산 정산에 올라가
억세고 굳센 목숨들을 보리라
승리의 깃발 흔드는 것을 보리라
광목천에 남쪽의 나와
북쪽의 네가 서로 부둥켜 안은
그림 그려 넣은
대동제 걸개를 보리라
천지인의 고구려 벽화를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