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7일 월요일

반달

달의 문을 반 열었는데
우루루 쏟아지는 빛줄기가
사랑한다는 글월의 전갈 아닌가
마음 다는 열지 않고
치마 슬쩍 들어올리면서
애태우게 하는 짓이란
조선의 저 뛰어난 기생 누구 같아
돌담 아래 어디에서
밤새우며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또 풍류를 즐기는
조선의 누구라서
반달 뜨는 딱 이맘때쯤
탁주 한 잔에 시조 한 수 읊겠다고
거문고 청해 듣는 것이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정은 점점 쌓여가고
마침내 반쯤 닫아놓은 문마저
활짝 젖혀 열어놓으니
고운 빛의 살내음새 훅 풍겨와
내게 불끈 일어서는 것이 있어
잘 익은 사과 같은
당신을 반으로 가르는 것이다
나머지 반은 이 다음 생을 위하여
내가 절반만 가져가겠다
당신도 내 반쪽은
어둠 속에 그냥 묻어 두기를 바란다
나중에 당신의 빛나는 반쪽과
어두컴컴한 나의 반쪽을 맞추어
반달로 살아 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