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그믐밤에
찾아오겠다고 약속하였기에
뜬 눈으로 새웠는데
소복 소복 강물을 건너왔다
함박 함박 산마루 넘어왔다
창밖으로 불현듯
치맛자락 끄는 소리가 들려
잠깐 감았던 눈을 떠 보니
회귀의 물고기로
한 생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조선의 어느 하늘 아래였다
매화나무에 흰꽃이 만발했다
바람 없는 날마다
담벼락 아래에서 만나
살 섞고 피 나누었던
설화, 당신이었다
벌거벗은 흰몸이 너무 찬란하여
눈 다시 감으니
신라의 어느 땅이었다
천도나무에 흰 열매가 가득 열렸다
햇살 따스한 날마다
풀 우거진 숲속에서 만나
둘로 가른 마음 주고 받던
당신이었다, 설화였다
흰 꽃신 신고
내게로 평생을 걸어왔으므로
목숨 바칠 여인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