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일 목요일

황혼 엘레지

황혼 엘레지


바장이며 시작한 하루가

벌써 석양머리로 줄달음치고 있다

널 찾아 헤맨 지 벌써 오랜데

오늘도 빈손으로 돌아서며 그리움만 마시고 있다

쫓아도 쫓아가도 한 걸음도 좁힐 수 없는

신기루(蜃氣樓)처럼 너는

이편에서 저편으로 하늘을 가르다가

이제 바다 안으로 얼굴을 감추려드는데
네가 들려준 사랑말은 해바라기 되어

아직도 이리 식을 줄 모르고 내 몸을 데피고

돌아서면서 일으킨 네 바람자락에

그리움은 눈시울을 붉히며 하늘을 물들이고 있다

정녕 내게 넘겨준 사랑씨는

썩이려 썩이려해도 썩지 않는 씨알인가
한 알의 씨알이 썩지 않으면

그저 그대로 한 알로 남는다던데

너에 대한 그리움은 어이 썩지도 아니하고

하늘 닿아라 자라 오르기만 하는가

이제 노을은 외오곰사랑 들판날 새라

먹물 섞어 진홍 갈망(渴望) 검붉게 추스르고

밤의 장막을 제쳐 별빛을 불러들이며

사랑이 할퀴고 간 생채기를 얼싸고 있다
이리 노을은

내 속살을 헤집고 남긴 사랑앓이 열음인데

또다른 사랑 찾는 너는 노을바다를 노 저으며

아리수 사랑말로 에후릴 가슴밭을 일구고 있다

이제 한 줄기 바람으로 떠나고 싶다

너 없는 세상은 꺼적이라지만

이 색신(色身) 차라리 한 줌 재가 되어

구석구석 맺힌 한(恨)을 불태워버리고 싶다

그리하여
쇠든밤처럼 말라버린 밤 한 가운데 서서

너의 사랑을 그저 그리 지켜보는

담담 무심도인(無心道人)이 되고 싶다
날밤 지새며 너만 향해 얼굴 돌리는

해바라기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후기)

- 바장이다

부질없이 오락가락하다

어디 엉뎅이 한 군데 내려놀 데도 만만찮아 어제 저녁부터 꼬박 하룻밤 하루낮을 길바닥에 서서 노상 바장이거니 미칠 지경이다
(송기숙, ′녹두장군′)
- 외오곰

『홀로』의 고어, 또는 강조하는 말
『정읍사』에서도 『높이곰』『머리곰』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외오곰사랑』을 『짝사랑』의 의미로 사용해 보았는데
통용될런지 모르겠다
- 들판나다

들통나다


- 열음

『열매』의 고어
- 아리수(手)

속임수(手)
『아리송하다』하다거나 『아리아리하다』는 말에서 나온 것 같다
- 에후리다

꽃이 무리지어 활짝 피다

그 사람 떠나던 자리 조금 비켜 앉아/
서러웁게 서러웁게 불두화가 에후리었네/
밤 소쩍새 울음 꽃송아리에 묻혀 그리도 에후리었네
(최명길, ′불두화′)
- 꺼적

『거적』의 전라도 방언

전라도에서는 『당신 없는 세상은 헛것』이라는 말을 『당신 없는 세상은 꺼적이여』라고 말하곤 한다
최근 이보희가 나오는 주말 연속극에서도 이 말이 쓰여진 바 있다
- 쇠든밤

말라서 새들새들해진 밤(栗)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릇목의 삿귀를 들고 쇠든밤을 내여 다람쥐처럼 밝아먹고
(백석, ′古夜′)

인용 詩의 『삿귀』는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삿자리)의 가장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