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에 들이닥친
어제의 바람과
오늘 미리 예고한 비에
창밖의 감나무
적멸보궁으로 걸어가는데
몇 남지 않은 감이
풍광을 어지럽힌다
전생의 업장이 두터워
치유 못 할 병에 걸렸으니
죄를 참회해야겠다고
창문을 열고
내 속의
나무 한 그루, 뿌리 채 흔든다
잘 익은 허물 하나가
툭 하고 떨어진다
숲속 마음은 불콰하게 단풍 들고
발에 밟힌 낙엽이 벼랑 끝이다
다시 잘 익은 감 하나
바닥으로 툭 떨어지니
허물이 한 꺼풀 우지끈 벗겨진다
계곡 가슴에 얼음이 얼고
산 정상에 불현듯 눈꽃이 피었다
마지막 남은 허물이
무쇠처럼 단단하게 박혀있다
세상을 움켜잡고 놓지 않는다
희고 검은 새 한 마리 날아와
부리로 쪼아대니
산빛이 다시 푸르러지고
물 흘러가는 소리가 깊어진다
내 속에 골수骨髓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