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8일 목요일

파업(罷業)

겨울 산사에 가니
나와 뜻이 같아
측백나무, 파업 중이다
오를 수 없는 너의 절벽에 심어놓고
더디게 자란다고
뿌리가 얕게 내렸다고
바람 불면 넘어지기 쉽다고
투정을 부리더니
어디서 어떤 소문을 들었는지
몸에 좋다고 달려들어
팔, 다리를 분지르고
잎이나 열매를 한참 뜯어 먹었잖아
이참에 묘지로 갈지언정
곧은 뼈만 남아
굴복 없는 투쟁을 하겠다는데
대웅전에 버티고 앉아
무심으로 대응하는 부처에게
일갈하겠다고, 죽비 내려치겠다고
결의에 찬 눈빛 하며
굳게 다문 입술 하며
마침내 목숨 아니면 관철이라고
머리 삭발하고 단식하겠단다
너의 일주문 딛고 올라서서
풍경을 푸르도록 흔들어
눈 맑게 해주었던
범종을 누렇도록 두드려
귀 맑게 해주었던
측백나무가 파업이다
나도 절벽을 기어 올라
무언으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값도 내지 않고 생을 혹사시켰으니
파업 신청서를 내미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