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신 끄는 소리를 기다리며
남지나 해에서 발생한 태풍이 북상한다 했을 땐
그저 예년처럼 장마철에 찾아오는 불청객인양
그렇게만 생각했다
처음엔 일본 큐슈를 통과한다던 태풍이
여수 해안으로 올라온다 뉴스가 나오고
또 숨가쁘게 목포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리고 갑자기 제주 서남방 300키로 지점에서 흔적을 감췄다
해수면 미지근한 수온으로 수증기 증발이 적었던 모양이다
내 너에 대한 사랑도
어쩌면 이렇게 이리저리 흔들리며 혼자 몸부림치다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태풍을 닮는지도 모른다
네가 떠난 후 빈 방을 지키기 겁나
거리를 쏘다니며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그 많은 너 중에
너 닮은 너조차 찾아낼 수 없으니
너에게 말붙일 길마저 끊겨버렸구나
하긴 너, 집을 떠나면서
네 흔적까지 모조리 거둬가 버렸으니
본래 형체조차 있을 수 없는
네 몸 내음을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이냐
너 떠나면서 남긴 갑작스런 이별은
내 몸에 지울 수 없는 첫사랑 자문(刺文)을 남겼다
그래 난
네가 남기고 간 유산을 지우기 위해
살갗을 벗기고 자문을 바르며
또다른 너의 모습을 먹물에 실었다
그러나 깨고 나면 그 뿐
네가 남긴 자문만 아침과 함께 내 기억의 문을 두드리고
또다른 너의 모습은 망각의 강을 건너고 있다
애시당초 자문은 지울 수 없는 표범의 얼룩처럼
첫사랑에게만 천형(天刑)처럼 남는다는 걸
수많은 또다른 너를 새겨넣은 이제야 알았다
이제 나는
너에 대한 기억이 아스라해지고
그리움을 덥힐 추억마저 바닥난 벌판에서
천형처럼 남아 있는 첫사랑 자문만 부둥켜안고 떨고 있다
내 너에 대한 사랑은 이렇게
이리저리 흔들리며 혼자 몸부림치다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태풍을 닮아가는가
문고리를 붙들고
너의 신 끄는 소리만 기다리고 있다
(후기)
- 태풍(颱風)
지난 7월 4일 소멸된 『민들레』호
- 예레미야 13 : 23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Can the leopard change his spots?
- 자문(刺文)
문신(文身)
- 바르다
속에 있는 알맹이를 꺼내려고 겉을 쪼개어 헤치다
밤을 ∼
뼈다귀의 살 따위를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