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8일 금요일

너의 신 끄는 소리를 기다리며

너의 신 끄는 소리를 기다리며



남지나 해에서 발생한 태풍이 북상한다 했을 땐

그저 예년처럼 장마철에 찾아오는 불청객인양

그렇게만 생각했다
처음엔 일본 큐슈를 통과한다던 태풍이

여수 해안으로 올라온다 뉴스가 나오고

또 숨가쁘게 목포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리고 갑자기 제주 서남방 300키로 지점에서 흔적을 감췄다

해수면 미지근한 수온으로 수증기 증발이 적었던 모양이다

내 너에 대한 사랑도

어쩌면 이렇게 이리저리 흔들리며 혼자 몸부림치다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태풍을 닮는지도 모른다
네가 떠난 후 빈 방을 지키기 겁나

거리를 쏘다니며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그 많은 너 중에

너 닮은 너조차 찾아낼 수 없으니

너에게 말붙일 길마저 끊겨버렸구나
하긴 너, 집을 떠나면서

네 흔적까지 모조리 거둬가 버렸으니

본래 형체조차 있을 수 없는

네 몸 내음을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이냐

너 떠나면서 남긴 갑작스런 이별은

내 몸에 지울 수 없는 첫사랑 자문(刺文)을 남겼다
그래 난

네가 남기고 간 유산을 지우기 위해

살갗을 벗기고 자문을 바르며

또다른 너의 모습을 먹물에 실었다


그러나 깨고 나면 그 뿐

네가 남긴 자문만 아침과 함께 내 기억의 문을 두드리고

또다른 너의 모습은 망각의 강을 건너고 있다

애시당초 자문은 지울 수 없는 표범의 얼룩처럼

첫사랑에게만 천형(天刑)처럼 남는다는 걸

수많은 또다른 너를 새겨넣은 이제야 알았다

이제 나는

너에 대한 기억이 아스라해지고

그리움을 덥힐 추억마저 바닥난 벌판에서

천형처럼 남아 있는 첫사랑 자문만 부둥켜안고 떨고 있다
내 너에 대한 사랑은 이렇게

이리저리 흔들리며 혼자 몸부림치다

흔적도 없이 스러지는 태풍을 닮아가는가
문고리를 붙들고

너의 신 끄는 소리만 기다리고 있다

(후기)

- 태풍(颱風)

지난 7월 4일 소멸된 『민들레』호


- 예레미야 13 : 23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Can the leopard change his spots?

- 자문(刺文)

문신(文身)
- 바르다

속에 있는 알맹이를 꺼내려고 겉을 쪼개어 헤치다
밤을 ∼
뼈다귀의 살 따위를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