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 그늘에 앉아
누런 된장 한 그릇 놓고
식은 보리밥을 먹는다
김치는 오래 전에 시어 빠졌다
땡볕의 시절에 당신은
온기도, 찰기도 하나 없는
보리밥만 먹었다고 했다
보리밥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운이 좋은 날이라고 했다
한 숟가락에 가득 얹힌 밥알처럼
목숨 굴러떨어졌던 날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했다
무슨 단단한 열매의 씨앗 같아
잘 씹히지 않는 밥을
따뜻한 국 한 그릇 없이
목구멍 속으로 삼켜버렸다고 했다
등에 업고 머리에 이고
피란의 그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걸어갈 다리도 부서지고
타고갈 배도 끊기고
벌써 죽었던 목숨이라고 했다
급하게 먹었던 것이 체해서
설사 같은 세상을 살았다고 했다
다시는 보리밥 먹지 않겠다고
아니, 오늘은 보리밥 먹고 싶다고
산 속 밥집에 문 열고 들어가
총칼 같은 수저를 먼저 들었다
이것 저것 넣고 비빈 보리밥이
당신에게 들었던 전쟁터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