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0일 수요일

연 날리던 언덕의 사랑

등굽은 미루나무 가지에 목이 걸려 팔랑거리던 연이 왜 내겐 늘 신비하게 느껴졌을까
미루나무는 일년 내내 접신 할미가 입혀 준 빨강 파랑 주홍색 옷을 입고 동리 아이들
언덕 올라 제각기 만든 연 날릴 때면 우루루 우우루 제 이파리를 떨구며 접신 들린 듯
온몸을 떨곤 했어 크게 떨면 떨수록 아이들은 더욱 크게 손뼉치며 삐져 나온 엉덩이 들
어 내며 덩실 덩실 춤을 추었지 미루 나무가 크게 흔들릴 수록 연끝에 실어 보낸 하늘
가는 편지가 더 멀리 오른다고 믿었어 이따금씩 바람 불어와 사내들의 땀 씻어 내면 덩
치큰 사내들은 히끗히끗 돋아난 콧수염 만지며 하늘 높이 연이 오르기를 기원했어 자욱
한 초가집 연기 미루나무에 걸릴 때면 물동이 이고 지나는 소녀들의 뒷모습 보며 사내
들은 넙죽 넙죽 미루나무에 엎드리며 연신 조아리곤 했지 나는 오늘도 동구밖 언덕에
동그마니 서있던 등굽은 미루나무에 걸려 팔랑이던 참연을 떠올리며 언젠가 다시 한 번
내 안의 미루나무 신들린듯 두두루루 춤추기를 기다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