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4일 일요일
김예성의 ´언어의 꽃씨´ 외
<말에 관한 시 모음> 김예성의 ´언어의 꽃씨´ 외
+ 언어의 꽃씨
어제는 남의 말에 쉽게 요동했습니다.
이젠 말랑말랑한 거짓말이 유혹해도
입 다물고, 그 눈짓 속임수도 다 털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흥분한 언어의 씨앗을 받아
조심스레 흙을 파 뒤집어서
고운 음성으로 피어날 진실의 꽃씨를
가슴 꾹꾹 눌러 심습니다.
(김예성·시인, 1953-)
+ 꽃의 말
사람아.
입이 꽃처럼 고와라.
그래야 말도
꽃처럼 하리라.
사람아.
(황금찬·시인, 1918-)
* 말(言)에 대하여
입에 장미꽃을 물었다
꽃에 달린 가시가 찔려 몹시 아프다
눈을 감고 그래도 여전히 장미꽃은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한다
말은 못한다
장미꽃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이원·시인, 1962-)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세상에서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그보다 더 따뜻할 수 있는
그보다 더 빛나는 말이 있을 리 없겠지요
당신....
(김용택·시인, 1948-)
+ 말의 무게
거짓말의 무게는 1g
선생의 말은 5g
노인 말은 0g
자식 말은 1톤
모든 말
부도난 시대에
자식 말만 무겁다
(주강식·시인, 경남 함안 출생)
+ 나를 키우는 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저곳
공중空中이란 말
참 좋지요
중심이 비어서
새들이
꽉 찬
저곳
그대와
그 안에서
방을 들이고
아이를 낳고
냄새를 피웠으면
공중空中이라는
말
뼛속이 비어서
하늘 끝까지
날아가는
새떼
(박형준·시인, 1966-)
+ 햇빛이 말을 걸다
길을 걷는데
햇빛이 이마를 툭 건드린다
봄이야
그 말을 하나 하려고
수백 광년을 달려온 빛 하나가
내 이마를 건드리며 떨어진 것이다
나무 한 잎 피우려고
잠든 꽃잎의 눈꺼풀 깨우려고
지상에 내려오는 햇빛들
나에게 사명을 다하며 떨어진 햇빛을 보다가
문득 나는 이 세상의 모든 햇빛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강물에게 나뭇잎에게 세상의 모든 플랑크톤들에게
말을 걸며 내려온다는 것을 알았다
반짝이며 날아가는 물방울들
초록으로 빨강으로 답하는 풀잎들 꽃들
눈부심으로 가득 차 서로 통하고 있었다
봄이야
라고 말하며 떨어지는 햇빛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의 소리를 듣고 푸른 귀 하나가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권대웅·시인, 1962-)
+ 좋은 말을 하고 살면
말 한 마디가 당신입니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사람이 되고
아름다운 말을 하면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말 한 마디가 당신의 생활입니다
험한 말을 하는 생활은 험할 수밖에 없고
고운 말을 하는 생활은 고와집니다
말 한 마디가 당신의 이웃입니다
친절한 말을 하면 모두 친절한 이웃이 되고
거친 말을 하면 거북한 관계가 됩니다
말 한 마디가 당신의 미래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면 아름다운 소망을 이루지만
부정적인 말을 하면 실패만 되풀이됩니다
말 한 마디에 이제 당신이 달라집니다
예의바르며 겸손한 말은 존경을 받습니다
진실하며 자신 있는 말은 신뢰를 받습니다
좋은 말을 하고 살면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오광수·시인, 1953-)
+ 통한다는 말
통한다는 말, 이 말처럼
사람을 단박에 기분 좋게 만드는 말도 드물지
두고두고 가슴 설레게 하는 말 또한 드물지
그 속엔
어디로든 막힘 없이 들고나는 자유로운 영혼과
흐르는 눈물 닦아주는 위로의 손길이 담겨 있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도 통한다 하고
물과 바람과 공기의 순환도 통한다 하지 않던가
거기 깃든 순정한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사랑해야지
통한다는 말, 이 말처럼
늑골이 통째로 묵지근해지는 연민의 말도 드물지
갑갑한 숨통 툭 터 모두를 살려내는 말 또한 드물지
(손세실리아·시인, 1963-)
+ 백지의 말
나의 몸은 언제나 하얗게 비워두겠습니다
네 모는 날카로워도 속은 늘 부드럽겠습니다
설령 글씨를 썼다 해도 여백은 늘 갖고 있겠습니다
진한 물감이 있어도 내 몸을 칠하지 않겠습니다
가까이 가고 싶어도 늘 멀리 떨어져 있겠습니다
바람이 불면 납작하게 엎드리겠습니다
칼날이 다가오면 물처럼 연해지겠습니다
그러나 불빛에는 되도록 반짝이겠습니다
노래가 다가오면 치렁치렁 몸으로 받겠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들어올 문을 열어두겠습니다
당신이 들어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향기가 되겠습니다
그땐 당신이 내 몸에 단 한 폭 그림을 그리십시오
그러기 위해 한 필 붓을 마련해 두겠습니다
(이기철·시인, 1943-)
+ ´아빠´란 말
시인은 選民이 아니라,
신의 저주를 받은 사람.
왜 이리 心身이
安着을 못하고
밤낮 방황하고 있는가.
중년이 되도록 제 길을 못 찾고
낯선 곳을 헤매는가?
젊은 그니와 몰래 만나고 온 날 밤,
˝아빠! 이제 오세요.˝
막내가 찡하도록 반겨주었다.
아이의 ´아빠´란 말이
평소 옆 잘 돌아보는 나에게
앞만 보고 살라는 뜻의,
´앞 봐!´로 들렸다.
(김시종·시인, 1942-)
+ 나무가 말을 한다면
강이 말을 한다면 뭐라고 할까?
나에게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나무가 말을 한다면 뭐라고 말할까?
나를 함부로 베지 말아요.
하늘이 말을 한다면 뭐라고 말할까?
나에게 나쁜 연기를 뿜지 마세요
(작자 미상)
+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세상 어지럽게 많은 말들을 뿌렸습니다˝
다 잊어 주십시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다 잊어 주십시오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당신의 사랑의 은혜 무량했습니다˝
보답 못한 거 다 잊어 주십시오
아, 언제 이 세상 떠나더라도
이 말 한마디
다 잊어 주십시오.
(조병화·시인, 1921-2003)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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